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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6일

< 교회의 사회적 책임 2.0 포럼 - 문화편 > 토론 (2009.6.11)


사회 :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
토론 : 최은호 목사(예장통합 문화법인 사무국장)
         박상규 목사(분당만나교회 문화사역담당)
         박준용 기획자(청어람 문예아카데미, 한양대 강사)
         신동주 PD(CBS TV국)





조성돈 교수> 오늘 참석하신 분들의 자신소개를 시작으로 토론을 해 보겠다.

박상규 목사> 분당 만나교회에서 문화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만나교회는 교회 내 흡연실이 있는 걸로   한때 이런저런 말이 있었는데, 추후 만나교회 문화사역을 자세히 소개하겠다. 최근에는 청년들과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최은호 목사> 이전에는 동숭교회에서 문화사역을 담당하다가 현재 예장통합 문화법인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문화포럼에서 제공하는 ‘착한 커피’ 한 잔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것이 문화적 감수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동주 PD> ‘새롭게 하소서’ 간증 토크  프로그램 담당.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과 서거에 대한 대화를 할 때, 방송국 스탭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되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2008년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낮은 것을 확인하고, 대안을 찾고 있었다. 문화를 통해서 소통을 하려고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접근법인지 고민이 되었다. 마치 신영철 대법관을 사건을 통해서 법원의 신뢰도가 떨어졌을 때 문화적 접근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시도가 그렇지 않은가?

박준용 기획자> 청어람 아케데미 문예부분 강의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자기에 대해서 잘 모를 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잘 모른다. 사실 이를 직접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무식하다는 것이다. 상대를 모르고 우리도 모르고 문화도 모른다. 문화는 해석의 폭이 넓고, 옳고 그른 문제로 나누지 않아도 되기에 문화가 소통의 장으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조성돈> 토론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임성빈 교수님이 웹 2.0, 사랑과 이해, 이 시대의 특성이 무엇일까 하고 얘기해 보았으면 한다. 이 시대의 특성이 무엇일까요?

신동주> 임성빈 교수님의 글을 읽고 모순된 것을 느꼈다. 웹 2.0 정신은 인터넷을 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 댓글이 달리고 반응과 소통이 일어나는 정신일 것이다. 인터넷이 문제가 아니라 인터넷과 상관없는 오프라인에서도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이루어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교회 부목사와 담임목사, 교회홈페이지 내에서 소통의 문제)

박상규> 웹 2.0은 소통이고, 공유가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공유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조성돈> 소통, 공유, 민주주의가 주제로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시대의 감수성이 무엇인가를 물어 보고 싶다.

박준용> 문화적 감수성이라고 하는 부분을 고민해 보았다. 한국교회신뢰도조사 결과가 예측된 결과이지 않았나? 청년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배타적이고, 거부한다고 했을 때, 그 이유는 기독교는 정답을 가진 종교이고,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대는 함께 생산하고 함께 공유하는 것인데, 교회에서는 그 생산을 대부분 교역자로 독점하다 보니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다. 영화에 대해 함께 논의할 때 교역자들은 교역자로서의 권위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교회 안에서는 소통하기 어렵다. 신학적 전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청년들은 얇고 넓게 알고 있고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권위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소통에 어려움이 생긴다.

이 시대 청년들은 윤리를 싫어한다. 실천도 싫어한다. 운동도 싫어한다. 왜냐하면 캠페인같고, 386세대의 모토같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정서적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름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방법이 문제가 아니었다. 예전에 열린예배, 구도자예배를 했는데, 그것은 복음은 문제가 없는데 형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우리의 본질이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가를 자기 반성적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적 감수성의 방법 찾기가 아니라 복음의 본질 구현찾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은호> 방법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중에 다시 방법론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내용과 방법론은 언제나 함께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내용과 함께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조성돈> 신동주 PD의 발제문에 “기윤실, 사과하라”는 부분이 있는데, 그에 대해 상세한 설명과 기독교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신동주> 영화 “거짓말”에 대해 보여준 기윤실의 행동을 생각했을 때 오늘의 주제를 보고 적잖이 놀라면서 황당했다. 문화적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소통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치적인 결정, 인권, 민주적인 방식에 대한 반응들이 소통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을까? 소통을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하면 선교라고 생각한다.

최은호> 선교를 미션으로만 하지 않고, 요즘은 소통(communication)이라고 부른다.

박준용> 선교를 소통이라는 것을 한국교회가 전체적으로 받아들이면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한국교회는 소통을 전도를 위한 미끼로 사용하기 때문에 불신자들도 이미 눈치채고 있다.

최은호> 예를 들면 어느 시골교회에서 지역민들에게 클래식 공연을 누릴 수 있도록 문화체험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전도 목적 없이 제공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희망이 있지 않을까?

조성돈> 문화사역이라는 말 자체가 오래되지 않았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 것인데,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나?

박상규> 실정법상의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실정법상 불법이다. 종교기관에서는 종교교육목적을 벗어난 수익사업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어려움은 문화선교의 결과에 대한 교회의 조급함이다. 지역마다 교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조급하면 안되고, 무조건적으로 일률적으로 개체교회에 적용하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다.

박준용> 어려움은 1세대 문화선교사역자들의 폐해이다. 하지마라 듣지마라 보지마라 가지마라가 주 메시지이다. 1세대 문화선교사역자들의 폐해를 뛰어넘는 것이 필요하다. 결과에 대한 조급함도 문제이다. 문화사역은 관점을 새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함께 얘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목사님들 문화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지 않은가? 예술과 문화에 대한 다양성을 이해하는 과목이 신학교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은호> 예전 사역하던 교회에서 주일학교 수련회를 미디어캠프로 했더니, 학생들은 반응이 좋았는데, 교사들이 기도하고 말씀듣지 않느냐는 반론을 많이 했다. 한국교회의 지형이 그렇다. 대학로에 있는 교회에 카페를 한다고 하니 노년층의 반발이 심했다. 이유는 나이드신 분들에게 카페를 퇴폐적인 어휘인데, 감히 교회에 카페를 만들겠다는 것이가 하고 받아들이신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이름을 카페에서 커피숍으로 바꿔야 했다.^^

조성돈>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가?

박상규> 교회 파구스카페, 체육관 등. 실정법의 제한 때문에. 흡연실이 이 공간에 있다. 많은 남성들이 교회에 못 오는 이유가 흡연, 음주를 금기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서 그들을 배려하고자 흡연실을 만들었다. 어떤 문화 기획 공연은 외면 받기도 했다. 지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동주> 만나교회의 사역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다. 교회카페에 온 일반인들이 교회를 알게 되고, 목사님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일반인들은 교회 내의 민주성에 주목하지 않을까? 교역자 사회 내의 관계는 민주적인가? 교회 내 의사소통은 자유로운가? 묻고 싶다.

박상규> 지역주민들에게 열려있는 교회로 인식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역에 전도페스티벌을 전혀 하지 않는 교회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서 꾸준히 성장하는 곳이다.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최은호> 신PD님이 말씀하신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문화마케팅에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문화세대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 문화적으로 소통의 공동체로 변하지 않으면 한계는 분명할 것이다.

박준용> 형식이나 이미지보다 본질적인 태도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만나교회 문화선교가 잘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백화점 문화센터가 잘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차별적인 것을 줄 수 있을까? 만나교회의 문화선교는 논쟁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친근감은 주지만, 태도와 관점의 변화는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친근해 진 이후에 우리가 무엇을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만나교회의 사역은 대형교회가 아니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역들이 아닐까? 동네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청어람아카데미에서는 해석공동체를 지향한다. 삶에 대한 얘기, 문화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를 같이 보고 해석을 함께 공유하는 것. 크리스천이나 넌크리스천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해석의 장. 영화해석공동체 매뉴얼을 만들고, 스탭들을 키워 각 교회 모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작은 교회에서도 할 수 있다.

박상규> 영화 소모임 도입을 시도하겠다. 우리 사역이 작은 교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닐까는 지적을 하셨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시작한 목회가 주일학교 학생이 1명도 없는 교회에서 문화사역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시작했었다. 문화사역에 대한 관심과 생각이 있다면 꼭 작은 교회라고 문화목회를 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 객석 질문

질문> 우리가 교회답지 못한 것이 외부적 활동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문화적인 감수성을 가지는 노력보다 교회 내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지 않은가? 분당만나교회에 묻고 싶다. 지역 내 교회에서 경쟁을 하지 않을까? 지역교회 다른 교회 사역자들과 함께 협력한 사례가 있으신지?

답변> 내부적인 정리부터 하고 세상과 소통하자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외부의 자극과 소통을 통해서 교회가 회복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경쟁하는 것은 좋지 않고, 함께 협력해야 하고, 우리 안에 작은 교회가 문화사역을 할 수 없다는 전제도 깨뜨려야 한다. 교회간 문화선교 네트워크이 필요하다. 개교회보다 기윤실이나 기존 공신력 있는 단체들이 이 일에 나서주었으면 한다.

질문> 문화적 감수성으로 만나다 라는 부제 자체가 문화를 좁게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 교회가 감성은 강조되지만, 이성이나 지성은 소외되고 있다. 제대로 된 성경공부가 이성과 지성의 회복이 되지 않을까? 오디오 비디오 중심의 문화에서 텍스트 중심의 문화를 회복하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답변1> 기존의 성경공부는 지양해야 한다. 삶을 회복하기 위한 성경공부를 지향해야 한다. 삶의 컨텍스트에 대해 해석하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답변2> 텍스트냐 영상이냐는 중요한 차이가 아니다. 내가 만약 목회를 한다면, 인터넷 카페를 하고 싶다. 설교에 대한 반응과 비판을 듣고 싶다고 ‘열린 인터넷 카페’를 열겠다. 이런 인터넷 카페는 비용은 하나도 들지 않지만 용기가 필요하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문화 매뉴얼보다 이런 작업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질문> 문예창작하는 입장에서는 기윤실이 싫었다. 싫었지만 필요한 단체라고 생각했다. 임성빈 교수님의 글에서는, 웹2.0세대에 대해서 잘 분석해 주셨는데, 익명성에 대한 분석이 빠진 것이 아쉽다. 박준용 선생님께서는 오늘날 문화를 차단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오히려 어떤 문화 컨텐츠는 제한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화사역자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답변> 청소년에게는 제한되어야 하지만, 성인들은 각자 자신이 판단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성인들에게 문화적 컨텐츠를 제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제한해도 어디에선가는 노출되어 시험에 들게 될 것이다. 피하게 하고, 막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공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질문> 오늘 포럼에 지역교회 목사. 비신자들이 함께 참여했으면 좋았겠다는 바램이 든다. 신동주 PD님께서 보시기에 일반인들은 만나교회 문화사역에 공감할 지에 대해서 얘기해 주셨으면 한다.

답변> 내가 생각하는 소통은 아니지만, 그 노력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이 문화공간을 제공하는 것보다 신학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문화적 감수성이 없어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면 소통되고 존경 받을 것이다.

정리 : 강성호 간사
출처: http://www.cricum.com/gnu4/bbs/tb.php/cul_pds/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