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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8일

비자 인터뷰


 











비자 인터뷰를 하루 앞둔 오늘 나는 아들과 통화하고 오목공원을 산책하고 편집을 하고 퇴근 후에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걸었다. 안양천을 걸으면서 로마서 말씀을 묵상했다. 

2025년 5월 25일

검은 용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러 교회를 갔다. 집에서 지하철 양평역까지 걸어가는 데 15분 정도 걸린다.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건 공든 탑을 쌓는 게 아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우리가 넘어진다는 건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게, 그래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올려야 하는 게, 제로(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한다는 건 바울의 말처럼, 권연경 교수의 지적처럼, 달리기일 것이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 다시 달려가면 된다. 넘어졌다고 다시 출발선까지 돌아가서 다시 달릴 필요가 없다. 이 생각이 내게 격려가 되었다. 아, 다시 첫 돌부터 다시 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은 나를 얼마나 낙심케 해왔던가. 교회에 도착했는데 복도에 불판이 쌓여있었다. 아싸, 어쩌면 오늘 점심 때 고기를 먹는 건가!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 설교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벌어진 사건을 다뤘다. 예수님은 묻고 명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수없이 들은 설교였다. 오늘은 난생 처음으로 '네 자리'에 꽂혔다. 그 38년된 병자는, 병이 길어지자, 자기 자리에서 익숙함이 주는 안정감을 누렸을 것이다. 텀블러를 올려놓고, 핸폰 거치대를 설치하고, 콘센트를 마련하고, 와이파이 비번을 알아두고, 무언가를 기다리며, 아니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잊어먹은 채, 쇼츠와 릴스를 보며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그가 하루종일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매일 아침 습관적으로 자기 자리를 들고 연못가에 가서 자리를 잡은 뒤, 사건과 변화 없는 일상이 주는 안정감을 즐겼으리라 믿는다. 내 삶의 자리에서 쇼츠와 릴스와 온갖 오락을 치우고 불편한 자세로, 간절한 시선으로 연못을 바라보겠다. 내 자리에 만족하지 않겠다. ---- 점심은 기대했던대로 삼겹살이었다! 삼겹살, 상추,깻잎,쌈장,오이고추,잘 익은 김치와 뜨거운 밥을 먹으며 옆자리에 앉은 A와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A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나는 어떤 게임도 하지 않는다). 대화는 주로 나의 질문과 A의 답변으로 이뤄졌다. "그러니까 집을 짓는 거지?" "네". "자기 집을 짓는 과정 중에 어떤 고난이 있어? 그러니까 방해물이 존재해?" A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가방에서 마인크래프트 책자를 꺼내 방해자들의 리스트를 보여줬다. 다 영어 이름이라서 기억은 하지 못하는데 여러 종류의 나쁜 놈 캐릭터들이 있었다. 검은 용도 있었다. 설명을 듣는데 몹시 흥미로웠다. A는 지하에 집을 짓고 있다고 하면서 지하에 집을 지을 때의 장점에 대해서 이야기해줬다. "자기 집을 짓고 그 안에 머물면 정말 안정감이 들겠는데?" "예.집이라기보다는 은신처 같은 곳이예요". 그 말을 듣는데 갑자기 나도 게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마음, 난생 처음이었다). 지하에 나만의 은신처를 마련해 두고, 실제 회사에서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로그인한 후 그 안전한 은신처 - 이곳에는 당연히 책장이 있다! - 안에 있는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캐릭터로 변신해서 하루 10분~15분 정도 보내면 마음이 무척 안정될 거 같다. 거의 큐티를 하는 느낌이 들 거 같다. 특히, 지지상의 하늘에선 검은 용이 날아다닌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위험이 존재해야 은신이 더 달콤한 법이다. "그런데, 캐릭터들끼리 대화도 가능하니?" "예, 가능해요". 요즘 아이들은 조숙하기에 "그럼, 게임을 하다가 다른 여성 캐릭터와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있니?" "예, 있어요" "오, 진짜! 누구랑? "엄마요. 엄마도 게임을 해요". A가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완전히 한방 먹었다. "엄마는 아니지, 엄마 말고 ㅋㅋㅋ" 빵 터진 나는 웃고 있는 A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고 그 순간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집에 와서 책을 좀 읽다가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아름답고 행복했다. 오늘은 특별히 더 그랬다.

2025년 5월 23일

내가 차지 않을 시계


 











내일 정말 몇년 만에 남서울교회 청년부 시절의 동기들을 점심 때 보기로 했기에 오늘 오전 반휴를 내고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하루 미리 만나 점심을 먹고 차를 마셨다. 베트남쌀국수집 사장님은 이제 우리 모자와 친해졌고 또 우리 사정도 어느 정도 아시기에 "아, 다음 주에는 어머님께서 아들을 7일이 아니라 8일만에 보시겠군요"라고 웃으며 조크를 날리셨다. 어머니에게 간식과 믹스 커피와 빳데리를 간 손목 시계를 전해드리고 회사로 왔다. ---- 회사에 와서 권연경 교수 제2강 최종 가편을 시작했다. 나도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잘잘법 커뮤니티에 상담 답변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권교수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좀 더 '큰 지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질문에 답을 했다. (아, 역시 신학자는 다르구나, 고개를 끄덕끄덕). 권교수가 이 강의에서 그려주는 지도. 너무너무 세상에 전파하고 싶다. 편집을 하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복도에 나가서 받았다. "아들, 우리가 언제 만났지? 어제 만났나?" 오늘 만났다고 말씀드리면 어머니가 놀라실 거 같아 나는 말을 바꿨다. "어머니, 혹시 무슨 걱정 있으세요?", "응, 아들. 지금 내가 찬 이 시계, 아버지가 주신 것이기 때문에 장남에게 꼭 물려주고 싶어." 김영삼 대통령 싸인이 들어가 있는 청와대 시계였다.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셨다는 어머니의 기억은 맞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 시계를 차신 걸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늘 은색 시계를 차셨다. "예, 어머니, 다음 주 토요일에 제가 어머니 뵈면 그때 제가 잘 받아서 간직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 시계. 시간. 기억. 그에게 맞았던 기억. 대걸레가 부러졌던 시간. ----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길, 안양천에 들려 한 시간 산책을 했다. 

2025년 5월 22일

복된 하루



 












(시로 표현하면)

오늘은 신께서 
행복을 꾹꾹 눌러 
담아주셨다 

내가 됐어요 하는데도
더 담아주시려한다

(산문으로 기록하면)
오늘 오전에 잘잘법 녹화가 있었다. 김영봉 목사님의 강의를 네 편 녹화했다. 네 편 모두 내 마음에 아주 들었다. 녹화 후에 김목사님, 스탭들과 함께 추어탕을 먹었다. 다들 한 그릇씩을 다 비웠는데 나만 너무 많이 남겨서 조연출들이 놀랬다. 녹화 때 너무 집중을 했는데 그 긴장이 다 풀리지 않아서 밥이 잘 안 넘어갔다. 힘든 건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움에 가까운 긴장이었다. 적게 먹었기에 속이 편했다. 목사님을 배웅하고 스탭들과 함께 오목공원을 "오바퀴"(다섯바퀴 돌기의 우리팀 은어)했다. ---- 양치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편성팀 후배 넷이 내게 와서 오목공원 안에 있는 <오목한 미술관>에서 양예준 개인전 "눈빛으로 전하는 작은 기도" 색연필 그림 전시회를 본 소감을 이야기해 줬다. (며칠 전 나도 이 그림 전시회에 갔었고 큰 감동을 받아 작가에게 짧은 감사의 메일을 보냈었다.) 후배들의 말에 따르면, 양예준 작가의 어머니가 그림을 해설해 주는 과정에 내가 메일로 보낸 감상평을 소개했고, 후배들은 그 감상평을 듣다가 그 메일을 보낸 사람이 나라는 건 알게 됐다고 했다. 후배들이 그 전시회를 즐긴 것이 기뻤고, 내가 보낸 감상의 이메일이 양예준 작가와 그의 어머니가 써 나가는 "스토리"를 조금이나마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는 것이 몹시 감사했다. - - - 2시반부터 오늘 업로딩 되는 본편 검수 및 섬네일 회의를 했다. 섬네일은 "불안형 크리스천이 진짜 쉬는 법"으로 했고 제목은 "쉬어도 쉬어도 계속 피곤한 당신에게"로 했다. A가 이번 편에는 에필로그가 있으면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에필로그를 썼다. 1안,2안,3안을 썼는데 3안으로 정해졌다. B가 에필로그를 위해 고른 배경영상과 글씨체가 문장과 너무 잘 어울렸다. --- 퇴근길. 회사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도중에 잠시 길에 멈춰 서서 서두에 썼던 시를 썼다.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고, 집에서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안양천을 한 시간 산책했다. 오늘은 작은 것 하나하나가 다 감사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안양천에 가는 길에 거치는 상가 골목들도 아름답게 느껴졌고, 산책길 풀잎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오늘은 런닝 크루를 제일 많이 만난 날이었다. 한 여섯 팀 정도 본 거 같다. 제일 흥미로웠던 크루는, 뛰어오다가 내 옆에서 멈춰선 크루였는데 "멈출게요"라고 제일 앞에서 뛰던 여성이 말하자 다들 멈춰서 걷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가 나와 같아서 한 2분 정도 그들과 함께 걸었다. 그들은 다음에는 뚝섬 근처에서 뛰자는 얘기를 했다. 한동안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던 크루. 갑자기 아까 그 여성이 "십 초 전"이라고 말하자 다들 "네" 하며 하던 말을 멈추었고, 정말 십 초 쯤 지나 여성이 "뛸게요"라고 하자 다시 모두들 "네" 하면서 앞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목격한 런닝 크루였는데 정말 흥미진진했다. 


2025년 5월 18일

여성용 스킨 로션

 













오늘은 주일인데 교회에 가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매주 일요일 두 교회의 주일예배를 생중계하는데 오늘은 내가 주조 근무 당번이었다. 10시부터 꿈의교회 예배를 생중계하고, 11시부터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를 생중계했다. ---- 진행 당번인 피디들은 9시까지 출근한다. 주조와 부조 상황을 미리 점검해야 해서 그렇다. 9시 반쯤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 내 방에 스킨로션이 하나 있는데 이게 어디서 난 거지?" "어머니, 어머니 세수하고 쓰시라고 제가 어제 드린 거예요." "그렇구나. 아들 고마워. 잘 쓸게". --- 생중계 당번은 서너 달에 한 번 돌아오는데 아마 퇴직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하게 될 거 같다. 12시에 생중계를 마치고 점심은 오목공원 옆에 있는 셱셱버거에서 먹었다. 너무 좋은 날씨였고 나는 점심을 먹은 뒤 공원을 산책했다. 산책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 다음 주에 있을 미대사관 비자 인터뷰에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무척 신경 쓰이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나는 내 카톡 상태 메시지를 '차근차근'으로 바꿨다.)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혼인증명서를 한글로 발급 받은 뒤 영문으로 번역을 해야 했다.외교부 사이트에서 '증명서 용어 번역 가이드'를 하나 다운 받은 후 참고하면서 증명서를 영어로 번역했다. 3시간 정도 걸렸다. 완성했더니 뿌듯했고, 이런 때 스스로 내게 주는 선물은 단골 밀크티집에서 책을 읽는 것이었다. 찻집에 도착해서 밀크티를 시키고 갖고 간 시집을 읽었다. (나는 요즘 시집 읽는 데 푹 빠져있다. 내가 이렇게 시에 빠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시집을 읽는데 어머니 전화가 왔다. 나가서 받았다. "예, 어머니". "아들, 누가 내 방에 스킨 로션을 하나 갖다 놨는데 누가 갖다 놨을까?"

차를 한 번만 마셨다, 처음으로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만나 함께 외출을 했다. 단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차는 그동안 늘 가던 빠리바케트가 아니라 지난 주 어버이날에 동생과 함께 처음 갔던 탐앤탐스에서 마셨다. 매장 크기가 엄청 큰 곳인데 어머니는 넓어서 좋다고 하셨다. 2층에서 마셨다. 어머니는 창문 가까이에 놓여있던 의자를 실내 쪽으로 옮기셨다. 너무 창가에 있으면 잘못하다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내가 사가지고 간 스쿠알렌, 맥심 커피, 간식용 과자, 팥빵, 세수 하고 바르는 여성용 스킨 로션을 어머니에게 전해 드렸다. 어머니는 오늘 기분이 좋으신지 농담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는 나도 찐으로 빵 터진 괜찮은 농담이었다. ---- 오늘은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나는 어머니와 차를 마시고 헤어지고 나면 으레 단골 밀크티집에 가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왔다. 몇 년째 그래왔다. 오늘은 곧장 집으로 왔다. 혼자만의 차 마시는 시간을 안 가져도 될 거 같았다. 어머니와 차를 마시며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데 당연히 에너지가 들어갔다. 근데 방전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과연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나는 회의했는데 이런 날이 왔다.

2025년 5월 16일

퇴근길


 











퇴근길에 어머니와 통화했다. 어머니의 몸에서 점점 힘이 없어진다는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십자가를 손에 쥐고 걸으며 기도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도가 나왔다. 지난 60년간 이 여성과 나눈 시간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서로가 최선을 다했습니다. 불완전한 두 사람이 나눈 그 시간을 통해 저는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고통 없지 않은 그 모든 시간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의 저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제 모습에 감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려요. 그러니, 이 여성과 나눈 그 모든 시간에 감사합니다 ㅡㅡ 낮에 회사 사무실에 이규현 목사의 설교가 나왔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는 설교이다.


아들과의 통화, 성물(聖物)













회사 1층 로비에 있는 우리은행 앞에서 아들과 긴 통화를 했다. 아들은 지금 하는 경험을 자신의 아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들려 줄 실패가 있는 삶은 얼마나 축복인가. 실패가 없어 승리만을 들려줘야 하는 삶은 얼마나 가난한가. ---- 아들과 통화를 마치고 사무실에 갔을 때 내 자리에 A가 주는 선물이 하나 놓여 있었다.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 "이 십자가를 손에 쥘 때 두 가지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평화가 제게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가 제가 아는 이웃에게 임하게 하소서" 

2025년 5월 15일

오늘, 기적


 











내가 아끼는 A가 기적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가 기뻤던 순간. 

2025년 5월 14일

드라마틱한 오전




















오늘 셰익스피어 희곡 3권(맥베스,리어왕,햄릿)을 갖고 가서 잘잘법팀원 세 명에게 나누어주었다 ---- 개인적으로 가장 드라마틱했던 일은 오전에 일어났다. 사무실 내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조연출 A가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피디님, 편집실에 벌레가 나타났어요". 나는 옆에 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세 번 정도 빠르게 풀어 손에 쥐고는 편집실에 가서 커텐 뒤에 숨어 있는 바퀴벌레 닮은 벌레를 막대기로 쳐서 떨어뜨린 다음 휴지로 꽉 누르며 그대로 휴지로 싸서 내 자리로 돌아와 내 책상 옆 휴지통에 버렸다. 원샷원킬 스킬로 조연출 두 사람을 찐 감동시켰고, 편집실 문을 열고 나올 때 숨죽이고 안의 상황을 살피던 편성부원 둘의 박수를 받았던, 오늘 오전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 )

 

2025년 5월 13일

저녁 산책


 











저녁 산책을 다녀왔다 거의 쾌락이라고 불러야 할 즐거움을 준 한 시간 산책이었다.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전에 달리던 때 생각이 많이 났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게 주어진 것에 집중했고 그러면서 주어지는 평화로운 쾌락에 많이많이 감사했다

2025년 5월 12일

책과 사과



 











알라딘 중고매장에 책 팔고 받은 돈을 손에 쥐고 흡족해 하는 1인 ---- 책 팔고 받은 만2천원으로 만2천원짜리 사과 사고 흡족해 하는 1인. 갑자기 집안의 책이 다 사과로 보인다

2025년 5월 11일

화이트 와인

 












오늘은 예배를 드린 후 교회 식당에서 교우들과 점심을 같이 먹고 세대별 모임에 참석했다. 5,60대 모임은 찬양대실에서 열렸다. 15명 정도가 모였는데 모임을 진행하는 A목사가 "지난 6개월 동안 찍은 사진 중에서 나누고 싶은 3장을 골라주세요. 사람도 괜찮고 장소도 괜찮습니다. 그럼 서너 사람씩 짝지어 앉은 후 서로 나눠주세요". 나는 우리 조의 청일점이었다. ---- 얼굴로만 알던 교우들의 소중한 시간, 소중한 사람들을 알 수 있었다. B가 얼마전에 있었던 일을 소개할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음에 보게 되면 C와 D에게 묻고 싶은 것들도 생겼다. A 목사의 제안, 정말로 좋은 모임 진행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 오늘 설교는 성찬에 대한 거였는데 성찬식에 사용하는 포도주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 독일의 한 교회에선 레드 와인이 아니라 화이트 와인을 성찬식 때 사용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지역에서 재배하는 포도가 화이트 와인용이어서 그러하다고 함).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중에 어떤 것이 적절할까. 나는 과거에 순전히 지적인 호기심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레드 와인이 적절하고 화이트 와인은 적절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포도주(A)는 주님의 피(B)를 상징한다. 우리는 평소 수많은 A들을 사용하여 수많은 B들을 상징한다. A가 B에 대한 적절한 상징물이 되기 위해선, B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A에 담겨있어야 한다. 피의 가장 큰 특징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만약 피의 가장 큰 특징을 "척척함"이라고 본다면 화이트 와인이나 막걸리도 괜찮다. 하지만 피의 특징을 "붉다"로 보려한다면 레드 와인이 적절하다. ---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지적인 호기심 때문이었다. (내가 맞다, 네가 틀리다 가 교회에서의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만약 그 독일 교회에 다녔으면 담당 목사에게 한번은 질문을 할 거 같다. "피의 가장 큰 특징은 '붉음'에 있지 않을까요, 척척함이 아니라요?" 나는 어떤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그 답변이 내 생각이나 기대와 다를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나는 그 다음 주 성찬에 참석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주님이 내게 주시려는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기회를 사모하면서 화이트 와인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마셨을 것 같다.

2025년 5월 7일

어쩌면 마지막 녹화, 그와의


 











오늘 오후에 잘잘법 녹화가 있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권연경 교수가 3편의 강의를 했다. 첫 편 녹화는 A가 진행했고 두번 째와 세번 째 녹화는 내가 했다. 다 좋았지만 마지막에 했던,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원을 설명해 주는 강의가 마음에 깊이 다가왔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움과 도전이 될 거 같다. 미국에 있는 나의 둘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녹화 들어가기 전에 둘째와 통화를 했다. "오늘 권교수님이 오셔서 구원론에 관한 강의를 하셔". 아들과 함께, 기독교인은 구원을 이미 받은 것인지, 아니면 최종 구원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짧게 이야기 나눴다. "업로딩 되면 꼭 링크 보내줘") ---- 3편의 강의를 연속으로 하는 거라서, 추가 질문을 하기 위해선 집중해서 듣고 있어야 하기에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가 오늘 소중한 강의를 녹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식되었다. (내가 내년 1월 퇴직이라 권연경 교수를 이렇게 녹화장에서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녹화를 최대한 <느끼면서> 하고 싶었다. ---- 녹화는 6시 20분에 끝났고 권교수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저녁도 같이 먹었다. 권연경 교수는 십여 년 전 내가 총 60회를 제작한 신학펀치에 59회 출연해 주셨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꼭 한번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겨자에 대하여, 집에 있는 책장에 대해, 책을 버린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의 남은 시간에 대하여, 상담에 대하여 이야기 나눴다. 일어설 무렵, 아까 녹화 중에 시간이 모자라 묻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거기에 대해 그가 한 답변, 나의 남은 인생 여정 중에 거듭거듭 생각할 것 같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그게 과연 힘과 위안이 될까 했는데, 곧 동의하게 되었다. 그거야 말로 근원적인 힘과 위로라는 것을. 내가 했던 질문과 그가 한 답변은 이렇다. ---- "성경은 우리가 제대로 살지 않으면, 엉터리로 살면 최종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는 것 잘 알겠습니다. 그럼,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뤄나가야 하는 이 절실한 신앙 여정에서 불완전한 우리에게 힘과 위안이 되는 건 무엇인가요?". "상상력이요.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갖고 계신 꿈을 그려볼 줄 아는 상상력이요. 그게 우리에게 디그니티를 가져다 주지요." 나는 오랫동안 넘어짐-회개-넘어짐-회개-넘어짐의 반복을 이어왔다. 어쩌면 내게 은혜는 당장의 죄책감을 지울 때 한 장 뽑아 쓰는 물티슈 같은 것이었던 거 같다. (근원적인 힘을 잃고 물티슈로 전락한 은혜 ㅠㅠ). 그리스도를 닮은 존재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꿈. 내게 익숙하지 않은 이 꿈이, 이 꿈을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힘과 위안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자신에 대해 디그니티를 갖는 걸 나도 넘 경험해 보고 싶다. ---- 긴 녹화를 끝냈기에 긴장을 풀고 가고 싶어 단골 카페에 들려 밀크티를 한 잔 시키고 고야 제4권을 읽었다. 권연경 교수로부터 카톡이 한 통 왔다. "요즘 갖고 계신 책들 다 처분하고 있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이번에 쓴 <오늘을 위한 히브리서> 한 권 보내드릴까요?" "오, 영광입니다!". 나를 위한 히브리서가 될 거 같다.

2025년 5월 6일

봉투













나는 우리말 중에서 "봉투"라는 말을 좋아한다. 은근해서 그렇다. "선물을 사려다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그냥 용돈 좀 넣었습니다"는 너무 노골적이다. 반면에 "어버이날이어서 봉투 좀 마련했습니다"라는 말은 얼마나 은근하고 은은한가. 돈냄새가 아니라 봉투의 한지 향기가 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나는 이 말을 사용할 때마다 나 스스로 흡족해서 속으로 미소짓는다. 장모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신 게 분명하다. 문제의 봉투를 드렸을 때 아주 기뻐하셨으니. ------ 어버이날엔 찾아뵙지 못할 거 같아 오늘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뵙고 왔다. 장모님은 내가 사간 꽃을 아주 맘에 들어하셨다. 현관에서 한 번, 식탁에 올려놓자 또 한 번, 그리고 점심을 같이 먹고 나서 한 번 더 너무 예쁘고 너무 맘에 든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세 번 장모님이 오늘 점심 때 끓여주신 아욱국이 맛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밥 먹으면서 한 번, 다 먹고 소파에 앉아서 한 번, 장모님댁에서 나와 오목교 내 단골 카페에서 고야 제4권을 한 시간 정도가 읽다가 집에 돌아와서 장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어 전화로 다시 한 번. 

  

2025년 5월 4일

평범한 하루

 













어제 한 시까지 <트루먼 쇼>를 보느라 오늘 늦잠을 잤다. 11시 예배에 맞추려면 10시에는 떠나야 하는데 9시 반에 눈을 떴다. 집에서 10시 10분에 떠났다. 조금 늦겠지만 서두르지 말자고 생각했다. 양평역에 도착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엘베 안에는 5,60대로 보이는 여자 한 분이 있었다. 막 서둘러 걸어오는 중년 부부가 보여서 나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세 사람 사이의 인상적인 대화가 시작됐다. ----- 중년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너무 추워요" 라고 하자 남편은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참 다정치도 못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먼저 타고 있던 중년 여성이 조용히 "왜 자기만 추워해..."라고 남자가 한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난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그 여자는 질문을 한 거였다. 여자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왜 자기만 추워해...? 자기 오늘 춥구나 이렇게 말해주면 되는데....그쵸?". "맞아요! 이 사람은 공감을 못 해줘요" 추위를 많이 타는 여자가 반갑게 그 말을 받았다.  나는 처음 본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에 놀라고 감동했다. 여자 둘이 다정하게 말을 나누는 동안 남자는 멀뚱히 앞만 바라보고 서있었다. -----  나는 10분 늦은 11시 10분에 교회에 도착했고 주차장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셀카를 찍었다. 내가 예배당 자리에 앉고 얼마 뒤 부른 오늘의 찬송은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였다. 나는 매일 아침에 드리는 기도의 마지막을 "오늘도 앞으로 전진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로 끝맺어왔기에 "앞"이 아닌 "주께"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가사가 이상하게 크게 도전이 되었다. 왜 내 기도에는 앞으로 더 전진만 있고 주께로 더 가까이는 없었을까. 주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다는 작사자의 고백이 참으로 귀한 고백이란 생각이 들었다. ---- 성찬식 때 떡과 포도주를 받았다. 내가 한두 주 전에 깨달은 건데, 나는 주님이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했다. 갖고 있는 많은 것 중에서 살과 피만 주셨다고 생각해왔다. 근데 생각해보니 살과 피를 주신다는 건 "모든 것"을 주셨다는 뜻이었다. 앞에 서서 성찬을 받으며 "주님, 저를 위해 주님의 모든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받은 사람답게 살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예배 시간 중에 내가 무척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 성찬이 다 끝나고 목사가 이렇게 선포할 때다. "이제 평안히 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섬기십시오." 나는 이 선포가 참 힘이 된다. 이제 모든 죄책과 수치, 두려움을 주님이 감당하셨다. 이제는 평안히 가도 된다. 주님을 섬길 힘, 정결한 마음에서 오는 힘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게 감사하다. 내가 인사를 건네고 싶었던 청년이 두 명 있었는데 오늘 그 둘과 식당에서 마주쳤다. 인사를 건넸다. 점심을 먹고 마음 통하는 교인들과 찻집에서 4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 속에서 오늘은 평범한 하루였지만 특별한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별한 날도 부럽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양평역에 내려서 만두를 2인분 포장했다. 집에 와서 만두를 먹으며 쿠팡플레이에서 <노 서든 무브>를 봤다. 

2025년 5월 3일

치즈 크래커













오늘도 11:30에 요양원에 도착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 근처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양원 입소 다음 주 첫 점심 외출 때 발견한 식당인데 그후로 지금까지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이곳에서만 점심을 먹는다. 어머니가 이 식당의 볶음밥을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그렇다. 식당 주인 부부가 참 정이 많으시고 음식 맛도 훌륭하다. 이 식당을 알게 된 게 참 감사하다. ---- 식사 후 파리바케트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는 가방을 여시더니 리츠 크래커 두 통을 꺼내 내게 주셨다. 나는 크래커를 안 먹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해서 한 통은 받기로 했다. "한 통은 어머니 드세요". 어머니는 내가 돌려드린 나머지 한 통을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잠시 뒤 어머니는 다시 리츠 크래커를 꺼내시고는 "그래도 더 큰 거를 아들한테 줘야지" 하시며 내게 주셨던 크래커통 위에 당신의 크래커통을 겹쳐 놓으신 뒤 길이를 재셨다. "2026.02.05. E" 라는 동일한 사용기일이 찍혀 나온 동일 회사, 동일 종류 크래커였으니 길이가 다를 수는 없었다. 크기가 같다는 걸 확인하신 어머니는 민망하신 듯 미소를 지으시며 "크기가 같구나" 라고 하시고는 당신의 크래커를 다시 당신 가방에 넣으셨다. 2분 쯤 흘렀을까. "그래도 아들한테 더 큰 걸 줘야지" 하시며 어머니는 다시 당신의 가방에서 당신의 크래커를 꺼내 아들의 크래커와 크기를 재셨다. "아, 크기가 같구나" 어머니는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셨다. 그리고 2,3분이 또 흘렀다. "그래도 아들이 더 큰 크래커를 갖고 가야지"........그리고 커피숍을 나오기 전에 다시 한 번 더. 그렇게 오늘 어머니는 총 네 번 크래커 크기를 재셨다. 나는 한 번도 아까 재셨잖아요 라고 말하지 않았다. ---- 어머니와 헤어진 후 내가 잘 가는 단골 찻집에 가서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한 잔 시키고 아침에 내가 챙겨간 고야 제3권을 꺼내 읽었다. 조용히 고야를 읽고있자니 다시 힘이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저자 홋타 요시에가 고야의 <5월 3일>을 일종의 종교화에 빗대 해설하는 장면이 너무 좋아서 구글로 그림을 찾아 같이 보면서 읽었다. 찻집에서 제3권을 다 읽었다. (이제 마지막 제4권만 읽으면 된다.) 책 뒷표지에는 헤밍웨이가 고야에 대해 쓴 이런 글이 소개돼 있다. 헤밍웨이가 쓴 소설처럼 이 글도 단문으로 돼 있다. "그는 검정과 회색을 믿었고, 그 뉘앙스를 믿었으며, 빛과 어둠을 믿었고, 평지에서 높이 솟아오른 도시들을 믿었다. 그는 시골과 마드리드를 믿었고, 운동을, 자신의 고환을 믿었다. 그림과 동판 부식을 믿었다. 그는 보고,느끼고,만지고,쥐고,냄새 맡고, 먹고, 마시고, 올라타고, 미끄러져 내려오고, 부러뜨리고, 함께 자고, 의심하고, 관찰하고, 사랑하고,증오하고,욕망하고, 두려워하고, 멸시하고,경탄하고,파괴했던 것을 믿었다. 어떤 화가도 이 모든 것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야는 바로 이것을 시도했다." ----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고 한숨 잤다. 고야 제4권의 1장을 읽었다. 지금은 저녁 7:54. 다음 주 수요일에 잘잘법 녹화가 있는데, 강사가 보내준 녹화 사전 원고를 이제 살펴보려고 한다.           

2025년 5월 1일

두 마리 토끼


 











노동절에 출근한 우리 팀은 오늘도 멋진 팀워크를 발휘하였다. 일과 관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우리 팀. 너무 감사하다 ---- 사람들이 없는 사무실에서 글을 썼고, 5시쯤 퇴근해서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와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편의점 도시락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2025년 4월 29일

점심과 저녁













오늘 A와 점심을 먹고 오목공원을 산책했다. 요즘 우리팀이 오공을 산책할 때는 미니멈 오바퀴이다. A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 가슴도 뛰었다. ---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안양천을 산책했다. 아들이 오면 같이 가는 지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편의점에서 사들고 온 캔커피를 다 마셨는데 계속 들고 산책을 하기가 뭐해서 표지판 밑에 숨겨두었다가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다시 주워왔다. 

2025년 4월 27일

떡의 위치



 








오늘 예배 시간에 성가대가 찬양을 불렀는데 참 좋았다. 경쾌한데도 깊은 감동을 주었다. 가사 중에 "갈릴리로 가요", "죄로 상처나고 더러워진 모습 그대로 갈릴리로 가요"가 있었다. 정확한 제목을 몰라 내가 마음대로 붙여본 제목은 '갈릴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이다. (마가복음에 보면 천사가 제자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은 여기 계시지 않고 이전에 말씀하신대로 갈릴리에 먼저 가셔서 너희를 기다리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찬양을 듣기, 찬양을 부르기, 말씀을 듣기, 성찬에 참여하기. 모든 예배 순서를 통해서 은혜와 감동을 받았다. ---- 오늘은 지난 주에 세례를 받은 A가 나와서 세례를 받은 소감을 나누었다. 소박했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소감이었다. 아마 모두가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특히, 어머님 장례에 참석해 준 교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감사를 표할 때 그의 마음과 진정이 느껴져서 감동이 됐다. 또 하나, 내 옆 자리의 나이드신 남자 분이 나이드신 아내의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는 모습도 너무 아름다웠다. 교회에 오고 예배를 드린다는 건 타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집에서 혼자 푹(?) 쉴 때는 경험하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감동들. ----- 주보에 오늘 점심 식사 후 설거지는 '50대'라고 나와 있어서, 그리고 내가 59세라서, 점심을 빨리 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50대 교우들과 함께 설거지를 했다. 7,8년 전 내가 루터교회에 처음 왔을 때는 전 교인이 돌아가면서 설거지를 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공동의회 시간에 나는 손을 들고 전 교인이 같이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는데, 오! 감동! 바로 채택이 됐다. 2주 전 종려주일 때마다 하는 교회 대청소는 가볍게 "쨌지만"(ㅋㅋ), 내가 제안했던 설거지를 쨀 수는 없는 일이었다 (ㅋㅋㅋ) -----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숍에 가서 마음의 교우 A, 그리고 오늘 설교를 한 B 목사와 셋이서 정말 수다삼매경에 빠졌다. 대화의 주제는 주님의 피와 살에서부터 자동청소기까지 정말 다양했다. 나는 전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루터교회 예배 시에 행하는 이런저런 전례들에 대해 궁금한 걸 다 물어봤다. 가톨릭과 루터회의 성호 긋는 방법의 차이,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도 들었는데 참 재미있었다.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전례 형식도 하나 있었다. 루터회의 성찬식에서 목사가 교인에게 떡을 건넬 때 그 떡을 목사와 교인 두 사람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주고 받느냐 하는 것이었다. B목사의 설명은 이러했다. "목사가 손을 쭉 뻗어 교인 손에 쥐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안 해요. 목사와 교인 딱 중간 지점에서 멈추고 거기서 떡을 건네요. 목사도, 교인도 모두 그리스도의 몸을 필요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 주님의 몸을 통해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나타내는 거죠". 생각해 보니 오늘 떡을 건넨 B 목사, 지난 주에 떡을 건넨 C 목사 모두 그와 나 사이에서 떡을 건네 주었다. A 그리고 B 목사와 헤어져 지하철 역으로 걸어내려오다가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대화를 들었으면 뭐라고 말하셨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내 생각엔 이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다. "이런, 난 그날 밤에 그냥 별 생각 없이 줬는데! ㅋㅋㅋ 그런데 지금 말을 듣고 보니까 나쁘지 않은 거 같애! 진작 알았다면 나도 그날 밤에 중간에서 건넬 걸 그랬네! ㅋㅋㅋ ". 물론 주님은 인간 목사가 아니니 중간에서 건네실 필요 없다. 팔 쭉 뻗어 건네셔도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예배의 동작과 형식에 신앙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것이 하나의 전통, 전례가 될 때, 그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그 작은 동작과 행동 하나를 통해서도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을 거 같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사람들 앞에선 성호도 그어본 적이 없는 전례 초보자다. 천천히 전례를 배워가며 전례가 품고 있는 신앙의 신비 속으로 더 들어가보고 싶다. 지하철 안에서 B 목사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카페에서 들은 전례 이야기 넘 흥미진진했습니다! : ) 형식에 관한 전례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참 신비로워요 정말 인간은 몸,형식과 마음,믿음이 서로 깊이 연결된 존재같아요! 다음에도 또 알려주세요! : ) " ---- 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찬양과 관련된 짧은 글 하나를 첨부한다. 7년 전 쯤 <갈릴리>라는 짧은 글을 하나 블로그에 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갈릴리>
오늘 처음 깨달은 사실인데요,
성경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면서
몹시 화도 내시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
무척 어이없어 하시고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정말 놀라기도 하시며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답답해 하기도 하셨지만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결코 하지 않으셨던 한 가지 행동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주님은 제자들의 부족한 믿음을 보셔도
결코 경멸하거나 비웃지는 않으셨어요!
책망은 하시되 경멸하거나 비웃지 않으시는 주님.
어제 또 죄를 지은 제게
이 사실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자신을 버린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셔서 제자들 기다려 주신 주님.
저도 오늘 믿음으로 갈릴리로 가겠습니다.

2025년 4월 26일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김혜령 지음, IVP)를 읽고


 











1. 미생을 만화로도, 드라마로도 봤다. 누군가 내게 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냐고 묻는다면, 내겐 그건 다음 장면이다.

누군가 장그래가 속해 있는, 그러니까 오과장이 이끄는 팀에 합류했다. 기존 팀원들과 이 사람 사이에 긴장이 느껴진다. 이 남자는 일 때문에 술도 많이 마신다. 그러나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집에 가면 꼭 맥주 한 캔을 혼자 마신다. 회사에선 일 때문에 마신 거고, 자신의 술을 즐긴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점차 신뢰가 쌓여가고 한 팀이 되어간다. 이 사람이 이 팀에 완전히 마음을 연 날이었다. 회사 일로 팀원들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들어간 이 남자가 침대에 조용히 눕자 아내가 묻는다. "웬일이야, 일로 먹은 술은 먹어도 먹은 게 아니라고, 늘 맥주 한 캔은 하고 자는 사람이....". 그러자 남자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은 충분히 마셨어". 남자의 "충분히"라는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 이제 따로 혼자 더 안 마셔도 될만큼 신뢰하는 사람들을 만났구나. 그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더 이상 업무만은 아니구나.  너무 다행이다. 

2. 토요일이면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만난다. 허락을 받고 함께 외출을 해서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함께 커피를 마신다. 그렇게 <두 시간>을 함께 보내고 어머니와 헤어진다. 그러고 나는 집 근처 찻집에 가서 혼자 다시 차를 마신다. 그때부터 나만의 차를 마신다. 자주 혼자 묻는다. "아까 충분히 마셨어"라고 하며 그냥 집으로 가는 날이 올까? 

3. 이화여대 김혜령 교수가 쓴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를 지난 겨울 우연히 손에 쥐게 되었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 점점 심해져서 집 근처 요양원에 모신 즈음이었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였다. 책의 부제는 '약해진 자들과 동행하는 삶의 해석학'이었고 나는 제목보다는 부제에 끌렸다. 책은 총 9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첫 장은 배회를 다뤘다. 왜 치매 환자들은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는지. 둘째 장은 옷차림을 다뤘다. 그들의 옷차림은 왜 종종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두 장을 읽고 검색을 통해 저자의 이메일 주소를 찾은 후 짧은 메일을 보냈다. 이런 내용이었다. 

"한 장 한 장을 읽을 때마다 저희 어머님 상황을 떠올리게 되고, 어머님의 존엄, 저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묻게 됩니다. 참 외로운 질문이었는데, 이 책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 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참 힘이 되고 감사합니다." (*환자와 가족의 "존엄을 지킨다"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4. 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를 모시는 저자의 아주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와 사회학적인 분석의 글이 번갈아 가며 한 챕터씩 등장한다. 전자를 읽을 때는 위로가 되었고 후자를 읽을 때는 우리 사회 내 나의 위치가 그려졌다. 양쪽 모두가 힘이 되었다. 이 책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내 경우엔 제7장 '돌보는 자의 신학'에 그런 부분이 있었다. 저자는 먼저 이렇게 말을 했다. "돌보는 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능력이 있다. (...) 그[치매에 걸린 부모]가 어떻게 나를 키워 냈는지, 어떻게 나와 함께 살았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를 돌볼 수 있는 인내심이 조금은 더 생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실망했다. 대뜸 내 속에선 이런 반론들이 튀어나왔다. "누구나 다 좋은 추억을 갖고 있는 건 아니야. 대안이 너무 나이브한 거 아니야? 누군가에겐 과거는, 함께한 시간은, 양육받은 <그 긴 시간>은 기억할 때 힘이 되는 시간이 아닐 수 있다고. 추억함이 오히려 고통과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 저자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렇게 기억에 기대어 돌볼 수 있다면, 그 환자와 돌보는 가족은 모두 축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부모나 배우자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존재로 각인된 사람들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그래서 돌보는 이에게 필요한 능력은 기억력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5. 잘 돌보기 위해 기억보다는 상상력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손가락으로 상상력이란 방향을 가리켜 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그 상상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기억과 싸우고 있는 사람에게 상상은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배우고 싶다. 
 
진심으로 추천하는 책이다.

2025.4.26.
신동주

2025년 4월 25일

달력





 








회사에서 안 쓰는 달력을 하나 챙겼다. 내일 토요일, 요양원에서 어머니를 뵈면 드리려고 챙겼다. 요즘 어머니의 기억력이 많이 나빠지셔서 오늘이 며칠인지도 말씀하지 못하신다. 요일도 마찬가지다. 달력에 매일 하루에 하나씩 동그라미를 쳐나가면 그날 날짜와 요일을 알 수 있으실 테고, 그러면 어머니의 자신감도 좀 더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다. ----- 집에 와서 달력 오늘 날짜에 미리 동그라미 하나를 치는데 문득, 정말 문득, 내가 옛날에 달력을 한번 그린 적 있다는 기억이 났다. 내가 20대 중반일 때 부모님이 카자흐스탄으로 발령 받아 떠나셨다. 어머니 생일은 10월 2일이고, 그해 10월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 생각이 나서 10월달 달력을 그렸다. 눈물을 통해 2일을 보는 장면과 2일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그렸다. ---- 달력을 그리던 그날은 몹시 슬펐다. 오늘 집에 와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칠 땐 이상하게 거의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인생에서 달력이 나를 두 번 찾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5년 4월 23일

출애굽

 


























오늘 오전 가편을 하는데 강사가 구직하던 시기에 경험한 신의 손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32년 전 신께서 나를 인도해주셨던 일이 떠올라 4층 공원에 나가 10분 정도 기도를 드렸다. 모든 구직자에게 구직은 하나의 출애굽 경험인 거 같다. 그 바다...그 애굽 군대...그 막막함


















2025년 4월 13일

소년이 부러웠다


 











2025년 4월 12일

신의 자비하심

 













아침부터 누군가에 대한 섭섭함, 분노, 원망이 생겨 어머니와 요양원에서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에게 편지를 썼다. 완벽하게 썼다. 나는 괜찮은 사람, 그는 결정적인 실수를 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완벽한 글을 썼다. 읽으면 읽을 수록 그는 잘못했고, 나는 잘못한 게 없어지는 글. 읽으면 읽을 수록 내가 쓴 것에 나도 설득이 됐다. 하지만 전송을 누를 수는 없었다. 이 말이 기억나서였다."겨울에 나무를 베지 말라. 하강의 시기에 결정을 내리지 말라".  내 마음이 가장 밑바닥일 때 누군가와의 관계에 영향을 줄 결정을 내리는 건 어리석었다. ----- 알고 지낸 지 꽤 되는 타부서 직원이었다. 그가 한 말에 내 자존심이 상해서 생긴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내 섭섭함을 과장하고 극대화하고 있었다. 그가 한 말 중에 맞는 말은, 맞는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에게 고마워 해야 할 부분이 오히려 더 많았다. 그런 마음이 순간 들었고, 나는 신이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비를, 내 교만과 자존심 때문에 거부하지는 말자고 결심했다. (반드시 붙잡고 싶다). 내가 처음에 기억했던 글의 후반부는 이렇다.  "기분이 최저로 내려갔을 때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라. 기다리라. 참을성을 가져라. 폭풍우는 지나간다. 봄이 올 것이다. - 로버트 슐러". 내가 12년 전에 처음 본 글인데, 계속 기억이 나고 계속 나를 도와준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으로.  


2025년 4월 7일

기쁨으로만.

내 외로움은 깊고 진해서 쾌락으로 채워지지 못한다. 

기쁨으로만. 

쾌락은 악화시킬 뿐.

2025년 4월 6일

포도주와 초콜릿













교회에 도착했다. 오늘 현관에서 주보를 나눠주는 사람은 A였다. 대학교 1학년 때 남서울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친구다. 거기서 쭉 같이 조원->조장->'엘더'를 했던 친구였다. (엘더는 장로가 아니었다. 당시, 조장들을 위한 조장을 엘더라고 불렀다). 5년 전부터 이 루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했는데 오늘 그는 주보 봉사, 헌금함 봉사, 성찬식 포도주잔 봉사를 했다. 지난 주에 들었는데 자동차 봉사도 한다고 했다. 친구가 이 교회에 잘 정착한 거 같아 흐뭇했다. ---- 지난 주와 달리 나는 오늘은 성찬식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 떡도 빵도 둘 다 다 받았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몸입니다", "이것은 당신을 위해 주시는 주님의 피입니다". 설교도 좋지만 이런 성찬 예전에 매주 몸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 오늘 성찬식에서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이것이었다. 제일 마지막에 모녀가 함께 나왔다. 여자 아이는 너댓살로 돼 보였다. 아이는 포도주잔을 받자 뒤돌아서 교인들을 향한 후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히며 포도주를 원샷했다. 원샷을 한 후에도 잔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여전히 고개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나머지 한 손으로 하늘을 향하고 있는 포도주잔 바닥을 탁탁 쳤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이는 입맛을 다시며 다 마셨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아이가 300명 가까이 되는 교인들 앞에서 펼친 이 행동을 바라보는 젊은 엄마의 태도였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고 (그녀 역시 300명 가까이 되는 교인들 앞에서) 자신의 아이가 하는 행동을 끝까지 바라봤다. 그리고 아이가 모든 것을 마치자, 아이가 충분히 다 마시자, 아이의 손을 잡고 사뿐사뿐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 어머니가 떠올랐다. 나의 어머니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시고 어떻게 행동하셨을까? 아마 내 손목을 잡고, 나를 끌고 자리로 돌아가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신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누군가의 집에 우리 집이 초대 받아 갔을 때 그 집 어머니(내 친구의 엄마)가 주신 초콜릿이 너무 맛있어 정신 없이 먹은 적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제야 어머니의 안색이 안 좋은 걸 알아차린 나는 불안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에게 심한 꾸지람을 들었다. "엄마가 아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아?! ". 오늘 성찬식에서 어머니 생각이 났다. 원망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오늘 젊은 엄마에게 있었던 여유가 있었으면 어머니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하셨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72년 여름, 정신없이 초콜릿을 먹는 아이를  바라보던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주머니의 입가에도 분명 미소가 걸려 있었을 텐데. 마치 오늘 포도주를 "즐기는" 아이를 바라보던 모든 교인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듯이. 

2025년 4월 3일

카레라이스를 먹었다

 































쿠마카레에서 점심을 먹고 뉴웨이브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마시며 오목공원을 산책했다. 잘잘법 멤버들의 호를 함께 지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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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웃으며 지었다.  



2025년 3월 30일

다시 교회를 갔다


 











오늘은 내가 근 5년만에 다시 교회를 간 날이다. 얼마 전부터 다시 교회를 가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번에는 그 마음이 그냥 사라지도록 냅두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붙잡았다. --- 서울역 10번 출구로 나와서 교회로 올라가는데 이전에 친구와, 아들과, 혼자, 땀 흘리며, 비 맞으며 올라가던 때 기억이 났다. 교회 주차장에서 본당으로 올라가자면 나무로 만든 계단을 통과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주대범 장로님이 고치신 계단이다. 칠팔 년 전, 내가 이 교회에 처음 왔을 때,  점심 식사할 때마다 내가 앉은 자리로 와서 큰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주시던 장로님이 떠올랐다. 장로님, 저를 환대해 주시고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단을 오르며 짧게 기도를 드렸다. 코너를 돌자 주보를 들고 계신 교우들이 보였다. ---- 예배의 예전 하나하나가 마음에 다가왔다. 몸, 목소리, 찬양, 기도를 통해서 내 신앙을 표현하고 또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집에서 혼자 성경 읽을 때와는 많이 달랐다. ---- 오늘 교회 주보 전면에는 돌아온 탕자 그림이 인쇄돼 있었다. 찬송은 "여러 해 동안 주떠나"였고, 성가대 찬양은 "나에게 돌아오라"였고, 설교 본문은 누가복음 15장 돌아온 탕자였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유머라는 생각이 들었다. --- "3월 달에는 주일이 다섯 번 있습니다". 설교를 하기 전에 담임 목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 교회는 이렇게 주일이 다섯 번 있는 달에는 마지막에 주일에 어린이들에게 먼저 말씀을 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예닐곱 명의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 러그가 깔린 강대상 계단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담임 목사는 아이들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교인들에게는 등을 보이고) 돌아온 그림책을 들고 아이들에게 3분 정도 돌아온 탕자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담임 목사가 교회의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전교인과 함께 바라보는 경험은 감동적이었다. 목사가 그림책 속의 한 인물을 짚으며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개중에 제일 큰 남자 아이가 말했다. "백 퍼센트 아버지요!". 목사는 웃으며 백 퍼센트 맞다고 대답했다. ---- 매주 진행하는 성찬식에 참여했다. 너무 오래간만에 참여하다 보니 순서를 까먹었다. 앞으로 나가 목사가 주는 떡을 두 손으로 받은 후 기도하며 먹었다. 그리고 내 자리를 향해 걸어 들어왔다. 포도주도 있다는 걸 깜박한 것이다. '떡과 포도주' 중에서 포도주를 잊다니. 다시 돌아들어가 포도주를 받아 마셨다. ---- 예배를 마치고 식당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었다. 식판을 들고 빈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아이를 보니 아까 예배 시간에 그 아이 같았다. 나는 작은 용기를 내서 "네가 아까 예배 시간에 앞에 나가서 목사님 말씀 들었던 거 맞지?"라고 물었다. "예" "백 퍼센트 아버지요 라고 했던 말 기억난다. 몇 학년이니?" "5학년이요". 다른 교인과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는데, 밥을 다 먹은 옆 자리 소년이 내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와, 이렇게 예의 바른 소년이라니! 감동을 받는 나는 "이름이 어떻게 되니?". 아이가 이름을 말해줬고 나도 내 이름을 알려주었다. --- 점심을 다 먹고 지인 A와 함께 차를 마시러 갔다. 먼저 온 교우들이 있어서 합석을 했다. 대부분 40대였다. 내가 처음 보는 교우들도 여럿 있었다. 폭싹 속았수다 얘기도 하고, 잘잘법 얘기도 하고, 탄핵 재판 얘기도 했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성경 구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정말 너무 오래간만에 경험하는 성도의 교제였다. A와 나는 중간에 먼저 일어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과거에, 오늘, 나를 환대해 주신 분들 얼굴을 떠올렸다. 이번에 다시 교회를 나가면서 큰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그냥 정기적으로 나가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다. 이런 정기적인 예배 참여가 내 삶에 질서를 잡아주었으면 한다. 질서, 내년에 60이 되는 내가 지금 가장 갈망하는 것이다.  

2025년 3월 26일

섬네일 회의를 했다













오늘은 내게 참 특별한 날이었다. 같이 일하는 팀원들로부터 진한 신뢰라는 선물을 받은 날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찐으로 신뢰한다. 서로가 신뢰하는 팀이라니! 퇴근 길에 가족 단톡방에 "아빠가 오늘 참 특별한 하루를 경험했어. 어떤 기쁨은 '넘 좋다'만으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꼭 '감사하다'는 말이 붙어야만 하는 거 같아. 아빠의 요즘이 그러함"이라고 썼다. ---- A가 내 자리로 다가와 이혁진 작가의 <광인>을 추천해줬다. 

2025년 3월 24일

<아라비아로 간 바울>(벤 위더링턴 3세 지음, 북오븐)을 사려고 했다.

 












어제 지인 A가 sns에 <아라비아로 간 바울>(벤 위더링턴 3세, 제이슨 마이어스 지음, 오현미 번역, 북오븐)에 대해 언급한 짧은 글을 하나 발견했다. 참고로 이 책의 부제부터 밝히면: "회심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까지, 감춰진 시간을 찾아서".

지인의 짧은 글은 이러했다.
바울이 매력적인 유대인 미리암을 만난 후 혼자 말한다. “이런 느낌은 빨리 털어 버리는 게 아마 최선일거야”
이상하게 이 글을 읽는데 마음이 편해졌다. 사실, 대부분의 느낌들은 "털린다". 안 털려고 해서 문제이지, 털려고 하면 털린다. 지인의 글을 통해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하게 됐고,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느낌들을 너무 두려워 할 필요 없다. 그리고 빨리 털 수록 쉽게 털린다).
어제 무척 감명을 받았기에 오늘 퇴근길에 서점에 가서 그 대목을 직접 확인해봤다. 81 페이지에 나왔다. "미리암은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사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을 사려고 했는데 이런, 도서상품권을 회사에 두고 왔다. 내일 사야겠다.

2025년 3월 21일

신입 교육을 마쳤다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후배들과 이런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행복했음. 동료 A가 지난 30년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요? 라고 물었는데  내 30년은, 이웃이나 내 스스로가 조금만 원칙을 벗어나도 용납하지 못하다가 조금씩 원칙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배움으로써 이웃 그리고 나를 용납하게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말함. 


세상의 어떤 직장인이 이렇게 후배들이 경청해주는 가운데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을까? ㅠㅠ 

많이많이 고마움.


2025년 3월 20일

신입 교육 준비를 했다














내일은 내가 신입PD 교육을 맡은 날. 회의실을 예약함. 원래 신입 피디 한 명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잘잘법 팀원들도 같이 듣는 걸로 정해졌음. --- 오늘 같이 점심을 먹던 편성부의 두 동료도 강의 얘기를 듣더니 참석하고 싶다고 함. --- 또 다른 입사 2년차 후배 두 명도 소식을 듣고는 참석 의사를 밝힘 --- 그래서 총 8명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됐음 : ) 참고로 강의 제목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 프로그램 제작 및 기독교 출연자 섭외, 발굴을 하기 위한 PD의 지도".  내가 30년 동안 이 회사에서 피디로 일하며 알게 된 좋은 사람들과 고민했던 주제와 질문들을 전달하려고 한다. 

2025년 3월 15일

<콘트라베이스>(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열린책들)를 읽고.

 













십 년 쯤 전에 <세바시>팀에서 일 년 정도 일한 적이 있다. 그때 같은 팀원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어느날 팀원 중의 한 명인 A가 내게 책을 한 권 선물해줬다. 선물 받은 책을 십 년이 지난 오늘 읽었다.
소설의 형식은 내가 싫어하는 독백체였다. 소재는, 내가 좋아하는 '악기'와 '연주'를 다루고 있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뒤, 독백이라는 형식이 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았다. 주제 때문인 거 같다. "세상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악기를 연주하는 삶도 의미가 있는가". 은퇴를 일 년 앞두고 지난 30년의 '연주'를 자주 곱씹어보는 나였기에, 이 남자의 독백을 들으며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진심으로 계속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었다. 다만, 나라면 그가 지금 하려는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의 삶에 '이야기'로 남아야지 '에피소드'로밖에 남지 못한다면 너무 슬프고 아쉽다.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쓴 책은 여럿 알고 있다. <향수>, <좀머 씨 이야기>, <비둘기>. 하나 그의 책을 읽은 건 이게 처음이다. 번역자에 따르면, 쥐스킨트는 이 <콘트라베이스>를 "1984년 스위스의 디오게네스 출판사를 통하여 발표하였으며, 이것은 그 후 현재까지 독일어권 나라에서 가장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희곡으로,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선 내가 회사에 입사하던 해인 1993년 3월10일에 초판 1쇄 발행. 1999년 7월10일 초판 39쇄. 2000년 2월10일 신판 1쇄. 2015년 5월30일 신판 38쇄.
그러니까 A가 내게 선물해 준 건 신판 38쇄. 책을 다 읽고 10년만에 A에게 감사의 문자를 보냈다.

2025년 3월 13일

<주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라>(로버타 본디 지음, 황윤하 번역, 비아)를 읽고.

 













새롭게 섭외한 A 목사님의 네 편의 강의 중 두 번째 편 편집을 마치고, 오늘 업로딩 되는 영상 섬네일을 팀원들과 함께 정한 후 퇴근했다. 오늘도 퇴근길에 단골 카페에 들려 <주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라>(로버타 본디 지음, 비아)를 읽었다. 3세기~6세기 무렵 사막에 들어가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소위 사막의 교부들과 수도사들)의 삶과 신앙을 소개하는 책인데 이상하게 몹시 빠져들어 읽고 있다. 사실 나는 사막의 교부들 금언집들은 이전에 이미 꽤 읽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새롭게 다가온다. 아주 짧은 서문(이 책에선 '들어가며'라는 이름이 붙어있다)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천천히 세 번을 읽었다. 너무 짧은 서문이라 통째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람들을 처음 만난 건 20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두고 씨름하고 있었지만 말이지요. 다시 저는 제 지성과 마음을 모두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신앙의 형태를 찾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그랬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 앉아 저는 6세기 마부그의 필록세누스(Philoxenos of Mabbug)가 쓴 설교집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하느님과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흐릿하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몇 년 동안 저는 최대한 많이 이 전통에 속한 이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제게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위해 계심을, 우리는 서로를 위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있음을 가르쳐주었지요. 그들의 따뜻함, 통찰, 도움은 제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이었고, 제 삶 속의 지속적인 원천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어려운 현대 세계에서 이들은 여러분을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 저자 로버타 번디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1941년생이었다. 이름 때문에 난 저자가 남성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었다. 암산이 안 돼 계산기로 계산을 해보았더니 저자가 이 책 속 인물들을 처음 만난 건('20년 전') 그녀가 26세였을 때였다. 도서관에서 1500년 전 설교문을 '놀란 눈'으로 갈급하게 읽어내려가는 20대의 저자를 상상해 보았다. 어떤 마음이면, 수천 년 돼 돼 바스락거리는 글을 마치 생수를 들이키듯이 읽을 수 있는 것일까.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란에 이런 글이 보였다. "신학자 패트릭 헨리는 [그녀를] '기억의 마법사', '학문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벽을 무너뜨린 학자'로 평가했다." 그녀가 쓴 책 중에는 <고양이 닉>(Nick the Cat)도 있었다. -----  1장 시작, 2장 사랑, 3장 겸손, 4장 정념,을 다 읽고 지금 5장 기도,를 읽고 있다. 마지막 6장은 '하느님'이다. 사막의 교부들에 따르면 겸손은 " '나'를 다른 사람들과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차별화된 존재라고 여길 필요가 없음을 뜻합니다 (....)겸손을 익힌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견주어 애써 특별한 존재가 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것, 다른 사람이 어떤 부분에 있어 나보다 무언가를 더 잘한다 해서 괘념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교만은 결국 상처를 남기지만 , 겸손은 두려움을 없앱니다. 우리를 진실로 용감하고 강하게 만드는 것은 겸손입니다". (p.182-183). 그녀 덕분에, 나도 오래 돼 바스락거리는 지혜에 쫑긋 귀기울이고 있다. 

2025년 1월 20일

쇼잉 업




영화 <쇼잉 업>을 봤다. 같이 본 사람들 때문에 영화 관람이 더 즐거웠다. 영화 속 여주인공 리지는 작품 전시회를 준비 중인데, 그녀는 찰흙을 빚어서 인물들을 만든다. 난 평소 내 글쓰기 방식이 조소(彫塑)에 가깝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영화가 각별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퇴근 후에는 작업을 하고, 그 모든 과정 중에 아버지과 남동생을 신경써야 하는 리지를 보며 K-장녀를 떠올렸다. 예술가의 미학이 아니라 예술가의 일상을 보여주었던 것이 내게는 참 좋았다. 카메라가 분주하고 번잡한 일상을 살고 있는 리지를 보여주다가 가끔, 오륙 초 정도 씩, 그녀가 만들고 있는 작품을 잡는데, 나는 그게 또 좋았다. 전시장에 전시됐을 때보다, 그녀의 어지러운 일상 가운데 놓여있는 전시 전 작품들이 더 감동적으로 느껴졌다. 리지가 조소한 인물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모두가 무언가를 견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리지부터가 견디고 있어서 그럴 것이다. 영화 속 여주가 만든 작품들은 미국의 Cynthia Lahti 라는 작가의 작품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사진은 Lahti의 데뷔 솔로 전시회 작품인 <green leg> (2021). 

2025년 1월 19일

작업실

 














목욕을 하고 점심을 먹고 아들과 긴 통화를 하고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모시고 근처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와 잘잘법 강연회 잠언 편 자막 작성을 하고 있다 -- 배 고파서 배민 통해 우렁된장찌게 백반을 하나 시켰는데 라이더가 음식을 다른 오피스텔 (같은 호수 앞)에 갖다 놓는 바람에 원하던 시간보다 약 15분 정도 늦게 저녁을 먹었다 문제를 해결하느라 배민 문의전화 담당자와 통화한 건 배민 사용 후 처음이었다 배는 고팠지만 바삐 배달하느라 오피스텔을 착각하는 라이더의 상황이 눈에 그려졌기에 내 입에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 강풀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새벽 4시에 작업실에 도착하면 바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는 페북 카드뉴스 기사를 읽고는 바로 바탕화면으로 삼았다. 내가 지금 더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모세가 아니라 애굽의 바로 왕이다. (썰렁) 한 단어를 신이 내게 선물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젊음 대신 바로 를 선택할 거 같다. 강풀 작가는 지금 십 년째 자신의 원칙을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