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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31일

낸시랭의 신학펀치 첫 스탭 식사

오늘 낮에 목동 파라곤 지하 1층에 있는 중국집 리이웬에서 권연경 교수, 김학철 교수, 낸시랭과 첫 스탭 식사를 했다. 2013.12.30.

변호인,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는 (팟캐스트) - 8

여기서 들을 수 있습니다. http://adzero.kr/272
팟캐스트 <박샘의 위대한 수다>를 제작하는 정재원PD의 소개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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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40] '변호인,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는' 

이번 에피소드는 박샘의 위대한 수다 2013년 결산 방송이자 시즌 1 마지막 방송입니다. 어떤 방송으로 한 해를 마무리 지을까 고민한 끝에,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영화 한 편, 애증의 대상이 된 한국 교회의 위기 징후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로 방송을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우선, 우리가 선택한 2013년도 마지막 영화는,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관객의 마음을 울리고 있는 영화 '변호인'입니다. 우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이 영화에서 안녕치 못한 한국 사회 현실을 통감했고, 참 지도자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2부에 다룬 이야기는 2013년 한국교회 위기의 징후들입니다. 올 한 해에도 교회 안에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지만, 그중 우리는 '박정희 추모 예배', '사랑의 모 교회의 에스컬레이터', '차별금지법 반대', '홍대새가게'를 한국 교회의 가장 적나라한 위기의 징후로 선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수상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그리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한국교회의 교인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답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기독교적' 정답을 내놓지 못했지만, 잠정적으로 그리스도인이 공통 감각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습니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가 영화를 보고, 책과 고전을 읽는 방송을 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박샘의 위대한 수다 시즌 1은 끝을 맺습니다. 지난 10여 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 40회에 걸쳐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중간중간 분주한 일상 때문에 지치기도 하고 허공에 대고 말하는 거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취자의 격려와 관심, 그리고 우리 방송으로 큰 힘을 얻는다는 고백들이 있었기에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애청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년에 더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사회: 박샘, PD: 정도령, Guest: 신동주 CBS PD, 최은 영화 평론가)

* 방송 청취 방법
- 에디공 블로그(http://adzero.kr/272)
- 팟빵( http://www.podbbang.com/ch/3471)
- 아이튠즈(http://bit.ly/12Lezw1)
-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쥐약', '팟빵' 어플 설치 후 청취

* 2013년 결산 기념으로 올해 녹음한 에피소드 40편 리스트를 덧붙입니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40] '변호인, 한국교회, 그리고 우리는'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9] 사뮈엘 베케트 - '고도를 기다리며'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8] 스승님의 책들 - 'C. S. 루이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7] 지옥과 지옥 사이 - '사이비'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6] 베르톨트 브레히트 - '사천의 선인' ②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5] 종종 도망치고 싶은 당신에게 -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4] 내가 싫어하는 남자의 자서전- '스티브 잡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3] 목사 & 섹스 - '침대 위의 신'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2] 베르톨트 브레히트 - '사천의 선인'①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1] 괴물되기를 강요받는 당신에게 - '화이'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30] 내 직업을 결정해준 책 - '죽도록 즐기기'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9] 이원석 - '거대한 사기극'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8] 게오르그 카이저 - '아침부터 자정까지'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7] 엄마가 가장 힘든 당신에게 - '가을 소나타'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6] 38년 만에 다시 읽은 책 - '사기꾼 로봇'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5] 크리스천, 마지막 사중주를 연주하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4] 안톤 체홉 - '세자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3] 훌쩍 떠나고 싶은 당신에게 - '카모메 식당'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2] 내가 끊은 남성잡지들 -'GQ'와 '맥심'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1] 크리스천, '설국열차'에 탑승하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 20] 싸이, 음모론, 그리고 에디공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9] 정기적으로 읽는 책들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8] 헨리 입센 '인형의 집'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7] '은밀하게 위대하게' 흥행 논란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6] 크리스천, '비포 미드나잇'을 보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5] 불완전한 책들 - '화성의 인류학자'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4] '결정장애'의 결정판 '햄릿'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3] 투덜대도 괜찮아 - '내 아내의 모든 것'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2] 크리스천, '직장의 신'이 되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1] 내가 버린 책들 -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0] 크리스천, '로마 위드 러브'를 보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9] 크리스천, '안티고네'를 읽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8] 크리스천, '지슬'을 보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7] 크리스천, '인생학교 섹스'를 읽다 ②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6] 크리스천, '인생학교 섹스'를 읽다 ①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5] 크리스천,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을 보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4] 크리스천, '오이디푸스 왕'을 읽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3] 크리스천, '스토커'를 보다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2] 크리스천, '레미제라블'을 보다 ②
[박샘의 위대한 수다 ep1] 크리스천, '레미제라블'을 보다 ①


2013년 12월 20일

스승님의 책들 - C.S.루이스 편 (팟캐스트) - 7


(인용) 

혹시 스승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신가요? 저는 불행히도 마음에 품고 있는 그런 인물이 아직 없습니다. 그런데 다소 엉뚱하지만 독특한 관점을 보여주며 많은(?) 팬을 확보하신 신 피디님이, 이번주 방송 주제로 '스승님의 책들'을 하겠다고 알려왔고, 그 스승은 바로 기독교의 변증가로 알려진 'C. S. 루이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침 올해가 루이스가 죽은 지 50주년되는 해였고, 신 피디님이 스승님으로까지 칭송하는 루이스가 새삼 궁금해졌기에 기대가 되는 방송이었습니다. 실제로도 방송을 진행하면서 이전에 루이스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 생각이 상당히 걷혔고, 루이스를 긍정할 수 있는 지점이 넓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은 이미 루이스를 좋아하실 겁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루이스에 대해 그닥 큰 흥미가 없던 분들도 신 피디님의 안내를 받다보면 그가 달라보일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욕하거나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제대로된 변증을 해내는 사람을 찾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오늘날 기독교는 변증보다는 낮아져야 하는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공감적으로 설명해 내는 일은 시기가 아무리 어둡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C. S. 루이스 편은 우리에게 유익한 통찰을 제공해 줄 거라 믿습니다.  - 박샘의 위대한 수다, 정도령. 


- 방송 청취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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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8일

신규기획안 드디어 통과!

낸시랭이 오케이했어요! 드뎌 확정. 아, 이렇게해서 1년전부터 준비해온 프로그램 (가제) < 낸시랭의 신학펀치!  >  가 내년 1월 중순부터 방송되게 됐어요. 전 몰라요,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안 믿어져요! 이렇게,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이해되지 않을 땐 이해 안 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낸시랭,과 자기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 받고 있는 신학자 둘 (그러니까 총 3명)이 펼치는 신학 토크이어요. 오래전 출연을 약속하신 젊은 신학자 두 분, 아직 낸시랭의 출연 소식 모르지만, 그래서 놀라시겠지만, 무척 기뻐하실 줄로 믿어요! 흠흠 ^^ ‘성경공부’가 아니라 성경과 기독교 <  에 대하여 >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어요. 조크와 웃음과 전문성이 공존하는 신학 프로그램. (네, C.S.루이스는 어디선가 유우머와 경건은 공존가능하다고 했지요!)  <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신학적 질문들 > 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서 답을 찾아가는 가운데 우리 < 신앙의 근육 > 을 키워가는 프로그램! 네, Round 1 벨이 울릴 때까지 이제 D-40일! 신앙의 식스팩을 원하는 이들이여, 누구든지 다 모이라! (용문신한 조폭도...;;; )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이번 기획안을 지지,통과시켜준 국 식구들과, 계속 저를 응원 지지해 줄 페친들에게 이렇게 감사의 인사드려요...
왕! (앙! 하려했는데 안 어울려요ㅋㅋ)

2013년 12월 1일

교회의 크기와 언어

1. 사랑의교회를 처음 방문했을 때 무척 놀랐다. 교회에 이렇게 멋진 ‘차 마시는 곳’이 있다니. 정문으로 들어서자 넓은 뜰이 있었고 오른편으로 차를 마시며 담소할 수 있는 넓직한 <커피숍 같은> 공간이 있었다. 교회가면 종이컵에 봉지 커피 넣고 뜨거운 주전자 물 넣어 마시기만 했던 나는, 아무 때나 삼삼오오 모여서 마음껏 <쉐어링>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처음 봤고, 무척 놀랐고, 무척 부러웠다. 내 나이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였다. 그 첫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내가 삼십대 후반에 『사라져 가는 목소리들: 그 많던 언어들은 어디로 갔을까?』(다니엘 네틀,수잔 로메인,이제이북스)라는 책을 읽을 때도, 제일 먼저 그 <커피숍 같은> 공간이 떠올랐을 정도였다.
2.저자들은 마지막 남은 언어 사용자들을 소개한다. 1972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아서 베넷이 죽었다. 그는 음바바람어를 몇 마디 이상 할 줄 아는 마지막 인물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20년 전에 세상을 뜬 뒤 그도 이 언어를 쓰지 않았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선 1년에 1개 이상의 원주민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환경은 보존하려 하면서 왜 언어는 보존하려 하지 않는가. 이렇게 저자들은 묻고 있었다. 그때 문득 특정 신앙의 언어도 사라질 수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교회들은 사라지고 몇몇 큰 교회만 남는다면 - 영어만 남고 소수 언어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작은 교회에서 사람들이 쓰던 대화도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닐까. 난 예배 후 교회 근처 스타벅스나 커피빈 같은 커피숍에(큰 부담 느끼지 않고 갈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와 상가 교회 계단에서 자판기 커피 마시며 나누는 대화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 아빠가 요즘 허리를 다쳐 공사장 일도 못 나가 민호가 그나마 딱 하나 하고 있던 영어 학습지도 끊었어요. 그런데도 자기는 성격이 좋아 외국인 만나도 친구 충분히 사귈 수 있다고 막 큰소리 치는 거에요. 어미 맘 아플까봐 그러는 거 다 알죠. 이런 속 깊은 아들 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아까 나와서 기도하는데 감사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어요". (하지만, 감사하다고 하는 A집사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힌다). "초2 방학 때부터 어학 연수는 미국으로만 보내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캐나다로 갔는데 이번 기수 그룹이 참 좋았나 봐요. 우리 정우가 좀 내향적인 데가 있어서 연수 가는 거 싫어했는데 내년에도 꼭 또 가겠대요. 여호수아처럼 믿음으로 가겠다고. 어제는 식사 때 온 가족이 영어로 기도하는데 왜 그렇게 감사하던지". (이렇게 고백하는 B집사 입가엔 미소가 걸린다.)
3. 교회의 부(富)와 크기는 언어의 톤에도 변화를 준다. 결정적인 변화를 준다. 예를 들어, ‘목사님’이라는 단어를 한 쪽에선 “목사님 그 쪽 좀 붙잡아 주세요. 아니요, 조금 더 위로 올려주세요. 조금만 더. 오케바리! ” 라는 톤으로 호(呼) 한다면, 한 쪽에선 "하나님" 할 때 톤으로 호한다. "그 쪽 좀 꽉 붙잡아 주세요 아니 남자가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할 때의 톤을 <경험하지 못한> 교회 성도들은, 비록 에스컬레이터 설치된 화려한 대리석 건물 안에서 예배 드리더라도, 실은 <헐벗은> 것이다. 사춘기 중학생 한 명이 토요일 오후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서는 소파에 혼자 앉아 핸드폰 만지작 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건다. “목사님 뭐 하세요?” “말 시키지마라 게임한다 애니팡 ” “애니팡 재미 없는데. 최고 점수 얼마 나왔어요?”. 이런 대화 막는 목사의 스케줄, 교인의 수, 예배당 크기,를 <기독교적>이라 할 수 있을까.
2013. 12.1.
신동주

서플먼트

1) “공간은 인간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십 년 전에 읽은 한 외국 건축가의 글이 아직도 생각난다. 책과 음악과 친구 뿐만 아니라 공간도 인간 영성 깊숙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내가 건축에 대한 경구를 하나 짓는다면 이렇게 짓겠다. “건축가는 미래의 대화를 건축한다.”
2) 그렇기에 예배당 건축에 대해 고민할 때 우리가 1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건 소방법이나 건폐율이 아닌 심리학과 언어학이다. 이 공간 내에서 인간과 신(神)은, 성도와 성도는, 목회자와 비목회자는, 교인과 비교인은 어떤 종류의 대화를 나눌 가능성이 높은가. 다른 말로, 이번 건축은 언어적으로 우리를 부하게 하는가 헐벗게 하는가.
3) 그럼, 예배당은 어느 정도 크기가 적당해? 네가 그렇게 강조하는 심리학과 언어학적으로 설명해봐, 한다면: 예배 후 교회에서 점심을 같이 먹을 때 "오늘은 국수가 너무 퍼졌어요" 하는 목사에게, "그것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지난 주에는 싱겁다고 뭐라고 하더니!" 하며 주방에 있던 권사님이 핀잔 놓을 수 있는 크기. <핀잔>과 <예배당 크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있다. 우리가 자주 목도하지만, 예배당 크기가 일정 규모를 넘게 되면 담임 목사는 그 누구로부터도 꾸중을 듣지 않는다. 노인으로부터도.
4) “공간은 인간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한 건축가 이름을 찾으려고 한 시간 넘게 웹 검색 했으나 결국 찾지 못함. 그러다가 눈에 띈 윈스턴 처칠의 경구 하나. “우리가 건물을 짓지만 그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모양지어 간다.”

2013년 11월 28일

증오

(11.27) 내 삶은 내 타임라인과 달리 깔끔하지 못하다. 오늘은 새벽4시반에 잠이 깼다. 난 내가 그를 용서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한 장년이, 용서와 복수 사이에서 방황 중.

(11.28) 이런 글은 사실 밤에 써야 하는데, 집에선 인터넷이 안 돼 회사에서 써요. 제게 상처를 줬던 분을 오늘 만났어요. 만나서 제가 3주 전에 받았던 상처를 이야기했어요. 차분하게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는 거에요. 그래서 저도 그 분도 좀 당황했어요. 그 분은 진심으로 사과를 했어요. 전 감사하다고 했어요. 눈물이 흐를 때 순간적으로 당황했는데 회사에서 제가 누군가에게 눈물을 보인 건 아버님이 돌아가신 때가 유일했어요. 제 맘 속 분노가 그만큼 컸던 것 같아요 그때 루이스의 말이 떠올랐어요. 눈물을 흘린다는 건 영국신사답지는 않지만 그리스도다운 행동이다. 제 분노가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늘도 새벽에 잠이 깨 뒤척이다가, 그리고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주님. 당신의 연주를 저는 믿어요. 당신이 연주하는 제 삶. 상처받았음을 고백하는 게 약간 자존심 상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주세요. 상처 준 이와 대면할 용기, 증오보다는 용서를 택할 지혜를 주세요. 이번에도 역시 그분은 연주를 잘 하셨어요. 이번에도 기쁨과 평화의 곡이었어요. 그분과 이야기를 맺을 때,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다고, 그 시를 들려주었어요. 동료에게 화가 났다. 화가 났다 말했더니 화가 사라졌다. 원수에게 화가 났다. 화났다 말을 하지 않으니, 화가 더 커졌다. 나중에 쌀국수 한 번 같이 먹기로 했어요.  

2013년 11월 22일

The Other Shore by Gao Xingjian

Son sent me a message: Casted.
I sent him a message back : Expected : )

2013.11.22.

영화 < JFK > (1991)

어느날 저녁 영화가 하나 보고 싶었다. < JFK > 가 떠올랐다. 이미 개봉관에선 오래 전 종영을 했기에 그날 내가 영화를 본 곳은 신촌 전철역 근처에 있는, 철 지난 영화를 상영하던 극장이었다. 극장은 건물 10층에 위치했다. 표를 끊고 들어갔더니 신촌 일대가 내려다 보였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언론사 시험공부를 시작한지 2년이 되어가고 있을 때였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 발짝을 내딛는데 오른발에 채이는게 있었다. 아직도 콜라가 남아 있는 콜라캔이었다. 사람들을 따라서 출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출입문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난 줄에서 옆으로 빠져 나왔다. 사람들이 다 나가길 기다렸다가 무대 앞으로 갔다. 두군데 출입구를 통해서 밝은 빛과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어왔다. 빛과 소음 둘 모두 나 있는 곳까진 미치지 못하고 객석 중간에서 그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내가 서있는 곳은 어둡고 조용했다. 줄에서 빠져나온 난 외로웠다.

영화 말미에 감독은 자막을 통해 이 영화를 진실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바친다고 했다. 난 확인해보고 싶었다. 진실을 다룬 영화를 본 이들의 삶이 얼마나 진실해졌는지. 객석들 사이로 걸으며 사람들이 버리고 간 음료수캔을 찾아 그 수를 헤아렸다. 객석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를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이상하다는 눈길로 쳐다봤다. 캔은 전부 마흔여덟 개가 있었다. 이듬해 봄 기독교방송에 입사했다.

2013.11.22.
케네디 사망 50주년 되는 날에
20년 전 내 모습을 추억함.

2013년 11월 17일

대형교회.세습.

며칠 전 장신대에서 청어람 양희송 대표와 명성교회 부목 김하나 목사가 '기독교 생태계, 가능한 이상인가?' 라는 주제로 대담을 했다. (하나의 큰 추세인 대형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로부터 이 주제와 관련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는, 서로 질문,답변하는 자리였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묻고 싶었던 질문은 이것. <담임목사가 교인들의 이름을 모르는 상황에서 목회는 가능한가? 왜, 어떻게.> 생태계는 일종의 흐름인데, 관계의 흐름에서 가장 기본이 '이름 부를 수 있기' ,'이름을 부르기 시작함' 이라고 믿기에. 김하나 목사 및 다른 대형교회 목사들이 이 물음에 무엇이라 대답할지 궁금하다. 공격성 질문이 아니라 정말 <왜와 어떻게>가 궁금해서 하는 질문임. 기사를 보니 현장에서 세습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고 한다. 내 생각에 세습 반대와 더불어 강조해야 할 것은, 세습할 필요가 없는 교회 만들기.오히려 세습을 피하고 싶은 교회 만들기. 권력과 돈과 관련된 '메리트'가 전혀 없는 교회 만들기. 엄청난 대형 교회를 아들 목사가 아니라 제3자 목사가 맡았다고 치자. 아들 목사가 맡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지?

19금적 표현

추워서 털모자쓰고 이불 목까지 끌어당긴채 침대에서 권연경 교수의 짧은 논문 < C.S. Lewis - 사실이 된 신화와 신화적 알레고리>읽고 있다. 지금 이런 말이 나옴. <아슬란[나니아 연대기의 사자왕]의 수난이 실제 복음서보다 더 감동을 주는 이유는 "독자들이 방심한 틈을 노리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어떤 느낌을 가져야 한다는 선험적 강박관념이 오히려 감동을 막기 때문이다"> ( 따옴표 ,Killby 인용). <이렇게 보면 루이스가 채택한 "로맨스"(환상,신화)라는 장르는 "사람들 모르게 얼마든지 신학을 숨겨 들어올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위장"(cover)인 셈이다.>(따옴표 ,루이스 편지에서 인용). 이때 떠오른 생각. 19금적 표현도 위장,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밑바닥, 시장 바닥 용어 등장하는 철학과 신학 관련 글 써오고 있다. (이런! 제일 중요한 침대 위,가 빠졌군.) 다시. 그래서 밑바닥, 시장바닥, 침대 위 용어 등장하는. (생략) 

2013년 11월 16일

『 C.S. LEWIS - 별난 천재, 마지못해 나선 예언자』(알리스터 맥그래스 지음, 복있는 사람)

(1)루이스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 그건 누군가 그의 '팬'이 되려고 하는 것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네 책에 열광하는 것을 너도 알지? " 루이스는 이렇게 답했다. " 그걸 생각하지 않으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네." (2) (인용)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던 랍비 라이브는 이런 말을 했다."내가 매기드(Maggid)를 찾는 이유는 그가 가르치는 율법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가 자기 신발 끈을 어떻게 풀고 다시 매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불완전함의 영성』,p.173). 나도 그렇다. 루이스가 동료들과 소설에 대해 토론하며 차를 마실 때 어떻게 찻잔을 드는지, 강연장에서 무신론자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 전, 혹은 그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보고 싶다. 그가 어떻게 신발끈을 매는지. 그렇게 지켜보고 동일시를 하다보면 스승을 조금은 닮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3) 루이스는 누군가 자신을 스승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도 손사래쳤을 것이다. 분명.

내가 싫어하는 남자의 자서전 ' 스티브 잡스' 편 (팟캐스트) - 6




[박샘의 위대한 수다 팟캐스트] 내가 싫어하는 남자의 자서전 '스티브 잡스' - 신동주 PD (듣기 클릭)

지난달 박샘이 아이폰 5S 출시 소식과 동시에 아이폰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신동주 피디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방송으로 '스티브 잡스'를 다루겠다고 알려 왔습니다. 그렇게 두 분의 의견이 엇갈릴 것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방송이 진행됐습니다. 

기본적으로 신 피디는 스티브 잡스의 주장과 그의 행동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령, 잡스가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를 주장했지만 실제로 그의 인문학은 아이폰 제조를 담당하는 팍스콘 노동자의 자살과는 무관했다는 것입니다. 또는 그가 디자인의 혁신을 주도했지만, 그 제조 과정까지 그렇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반면, 박샘의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샘은 스티브 잡스가 일종의 예술가에 가깝고, 그러므로 그의 인격과 애플의 제품과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방송에도 언급되는 '모짜르트'는 실제로 위대한 음악을 만들었지만, 삶은 방탕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잡스의 이중인격은 비판받을 수 있지만, 제품은 별도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게 박샘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방송을 들어보시고, 잡스와 애플에 대한 두 분의 엇갈린 평가 속에 청취자분들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_ 팟캐스트 PD 정도령

* 방송 청취 방법
- 에디공 블로그(http://adzero.kr/264)
- 팟빵( http://www.podbbang.com/ch/3471)
- 아이튠즈(http://bit.ly/12Lezw1)
- 안드로이드 이용자는 '쥐약' 어플 설치 후 청취

2013년 11월 10일

『당신의 벗, 루이스』(C.S. 루이스 지음, 홍성사)

노보편집위원으로 있는 후배P가 원고료라고 하며 문화상품권을 갖고왔다. 난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전 다른 후배J로부터 원고료가 만 원밖에 안된단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후배P, "2만원인데요". 덥썩 받았다. 그 돈으로 지하에 있는 교보에 가서 C.S.루이스의 서간집 『당신의 벗, 루이스』(홍성사)를 샀다. 루이스의 편지 중 385통을 담았다. 뒤표지 중에서: "기도할 때 아무 느낌이 없어요", "총각이 숙녀에게 말씀드리려니 좀 이상하기 하지만 (...) 아이를 가지려면 쾌락이 따라야 (...) 하지만 그 쾌락이 아이를 낳는 것은 아니지요." (1955년 2월19일). 안타깝지만 톰 라이트(Tom Wright)에게 없는 게 바로 이런 것이다. 그의 신학이 아니라 문장이 버겁다.

2013년 11월 5일

기독교 방송에서 성을 다루기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 <현대문학>엔 '죽비소리'가 있다. 죽비소리는 현대문학이 97년 7월호부터 새로 마련한 서평란 이름이다. 공동 서평자들의 이름이 서두에 나오지만, 각각의 서평을 누가 썼는지는 모르게 되어있다. 이 죽비소리가 제21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김호경의 <낯선 천국>에 대해 '습작 수준도 안된다, 출판사의 이벤트 마인드가 만들어 낸 상품에 불과하다'라고 썼다.
2. CBS 기독교방송엔 <모니터보고서>가 있다. 내가 제작하고 있는 < 정오의 문화저널 > 8월 21일치 모니터평을 그대로 옮겨보면: “극단 이데아의 작품인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을 소개했는데 (.....) ‘밤일’,‘색마’ 등의 성적인 노골적인 느낌이 강했다. 또한 진행에 있어서 진행자들간의 노골적인 표현에 대한 웃음이 많아 진지함이 떨어지는 인상을 주었다.”
그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면서 난 한 모니터요원을 생각했다. 그는 몇살일까? 남자일까,여자일까? 결혼은 했을까? 그는 ‘진지함이 떨어지는 느낌을 주었다’라고 썼다. 지하철이 서울대역을 지날 무렵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진지한 신음’이란 것이 존재할까? ‘그(!) 신음’조차 진지하게 내야 하는 곳, 그곳은 과연 뭐라고 불러야 하는 곳일까?
3. 성폭력과 낙태가 수없이 일어나는 사회. 그리고 그런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성 관련특집 프로그램 또한 수없이 제작되는 우리 사회. 진지한 시그널 음악이 깔리고 ‘특집방송 청소년의 성, 이대로 둘 것인가’ 같은 타이틀을 사회자가 심각한 목소리로 읊는다. 그런 특집, 방송 백 번 해도 말짱 황이다. 방송 중엔 섹스 이야기를 하지만 방송만 끝나면 클리토리스, 피스톤 운동,주름,신음이란 말 쓰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 이런, 한 시간 짜리 특집 방송이 방금 끝났는데도 우린 조금도 더 자연스러워지지 않았다.
4. 이항규 박사가 쓴 책 <대학 없애야 우리가 산다>. 대학제도에 대해서 다루다가 불쑥 저자가 한 독일가정에서 점심 먹던 이야기가 등장한다. 15살 된 아들이 밥을 먹다가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니, 클리토리스가 뭐예요?” (시그널 음악도 없었다 ). 다른 친지들도 있는데 그 엄마, 낯색 하나 변하지 않으며 “그건 여자의 성기 윗 부분에 있는 아주 예민한 성감대야. 너도 나중에 여자 친구와 섹스 할 때 아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그런 곳이야. 그렇지만 그 부분의 느낌은 여자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게 아니기에 일률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는 없고, 하여튼 그 느낌에 대해서는 여자 친구와 항상 대화를 해 가면서 그녀의 느낌에 보조를 맞춰가는 게 중요하단다. ” 아들이 짓궂게 또 묻는다. “여자들 모두가 다 똑같은 게 아니라면 그럼 엄마의 경우는 어떤데?” 그러자 그녀, “그건 아버지만 아시는 비밀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되는....”하며 미소로 받아 넘긴다. 이항규 씨의 이어지는 얘기: “그날 점심 시간에 제일 얼떨떨해 있던 사람은 바로 나였다.”
5. 26년의 긴 신앙 생활을 하는 동안 한국 교회가 나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자연스러움>. 난 그 책에 등장한 그 자연스러운 대화를 난 읽고 또 읽었다. 그 대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그렇다, 맥락이 중요하다.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자신의 몸과 욕망과 쾌감에 대해서 웃으며 말할 수 있는 태도가. 그 사십대 후반의 여인을 게스트로 초청할 수있다면. 그 여인을 초청할 수만 있다면!
6. 그날 연극 평론가 이영미 씨와 장주희 아나운서는 완벽했다. 두 사람은 더듬거리지 않았다. 긴장하지 않았다. 두 여자가 자연스럽게 웃는 웃음소리를 스튜디오 안에서 들으며 난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그래, 지금 이 웃음 소리, 몇 개의 성 문제 특집 방송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중이야! 이 웃음 소리! 이 자연스러움! ’
7. 지하철이 사당역을 지나고 있었고, 난 여전히 ‘신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창세기에 나오는 여섯 번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외에 , 여섯 째날 밤과 일곱째 날 아침 사이에 들어가야 할 새로운 구절 하나가 떠올랐다. <듣기에 좋았더라>. 여섯째날 밤 에덴 동산에서 들렸을 <그 소리>가 그분의 귀에 좋게 들렸던 단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건 그 소리가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담과 이브, 요셉과 마리아. 그들이 항상 진지하진 않았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진정한 기독교는 밤에 진지하지 않다. (1997.9.1.)
* 피디 4년차, 서른 초반에, CBS 노동조합 노보에 기고한 글.

2013년 11월 3일

나는 새디스트

오늘 결국 못 참고 강남에 갔다. 밖에 서서 출입구를 쳐다봤다. 들어갈까. 들어갔다. 첫경험. 실내 풍경이 낯설었다. 사진을 찍어도 된다 해서 사진을 두 장 찍었다. 30분 넘게 둘러보고 그냥 나오려는데 그녀가 말을 걸었다.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이름은『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 』(그린비, 강대진 지음). 2만천원 정가책을 9천4백원에. 알라딘중고서점 강남점. 지금 그녀와 함께 침대 위. 난 새디스트. 모든 여성을 난폭하게 다룬다. 마구 긋고 쓰고 접는다. 내가 함부로 대하지 않는 여성은 딱 한 명. 성경. 어떤 줄도 치지 않는다. 줄은 치면, 줄 친 부분을 읽다보면 옛 기억과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2013년 10월 23일

지구를 지켜라 (2003년)

『우상의 추락』을 다 읽은 뒤 장준환 감독이 만든 <지구를 지켜라>를 봤어요. 저는 노출 연기는 나름 소화를 잘 하는데 폭력적인 장면은 견디질 못해요. 고문 장면이 많아 손으로 눈을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봤어요. 신하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신하균 나오는 거 끝까지 본 건 JSA 다음에 이게 처음인 것 같아요. 중간에 그가 이런 말을 해요. (사실 비명이어요) 내가 미쳐 갈 때 당신들 뭐했어! 지하철 타고 집에 오는데 그 질문이 이상하게 성경 구절처럼 제 맘을 무겁게 했어요. 지금 누군가 슬퍼 외로워 미쳐가고 있는데 나...

2013년 10월 22일

『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셀 옹프레 지음

집에 오는 길 지하철에서 읽은 책은 『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글항아리 출판사. 5분의 1. 아니, 7분의 1로 줄였으면 좋았을 책. 711페이지. 집에 오자마자 서가에서 꺼내 가방에 넣은 책은 『눈의 황홀 - 보이는 것의 매혹, 그 탄생과 변주』.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바다출판사. 오, 2만8천원! 가격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ㅋㅋ 내가 출연한 팟캐스트를 듣고 소감 댓글을 올린 이들 중 한 사람에게 책을 선물로 보내주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넉달 째. 이상하게 이번에는 이 책이 떠올랐다. 받는 분의 직업과 어울리는 책이다. 내일 발송할 예정. 그렇다고 『우상의 추락 』이 형편없는 책은 아니다. 사실은 맘 속으로 무척 공감, 지지하며 읽고 있는 중이다. 요지는 이렇다. 프로이트는 개인적인 경험을 전인류의 문제로 일반화시키는 오류를 범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거짓을 행했다. (자세한 내용은 생략). 너무 긴 건 죄다, 라는 마크 트웨인의 경구를 글쓰기의 좌우명으로 삼는 내가 이 너무 긴 책,을 계속 읽고 있는 건 저자가 쓴 이 책 서문 때문이다. “열다섯 살 때 나는 프랑스 오른 지방의 아르장탕 군청 앞 장터에서 프로이트를 처음 알게 되었다. 표지에 인쇄되어 있던 그의 모습이 내 눈길을 끌었다. (...) 헌책 좌판은 장을 보러 나온 풍만한 농갓집 여성들을 위한 브래지어와 베이지색 거들, 보정용 철사를 넣은 속옷을 파는 좌판과 모파상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남자들이 눈독을 들일 만한 자질구레한 양철제품을 늘어놓은 좌판 사이에 끼어 있었다.” 풍만한,부터 연필로 줄을 치기 시작했고 난 내가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을 거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때 살레시오회(1859년 요한 보스코가 창립한 수도회) 수도사들이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4년을 보내다가 막 바깥세상으로 나온 참이었다. ”, “고아원에 있던 수도사들 중에 소아 성애자가 몇 있었기에 나는 고아원에 있는 동안 언제 치욕스러운 일을 당할지 몰라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았다”, “그리고 그 무렵부터 지옥 같았던 하루하루를 견디게 해준 구원자는 다른 아닌 책이었다”. 3만2천원. 형편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구매나 일독을 권하기도 어려운 곤혹스러운 책이다.  

2013년 10월 20일

야구

야구를 거의 안 보지만, 야구와 함께 사는 옆자리 동료에게 야구 지식을 얻어 듣는다. 오늘 분당 어머님댁에 가서 저녁 먹고 케이블을 틀었더니 8회였다. 봉중근이 올라왔다. 내 생각에 봉중근에게 있어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8회 시작이 아니었다. 홈런을 맞아 1점을 준 그 시점이었다.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순간이다. 무언가 일을 그르쳤다. 이미 시간을 낭비했다. 어이없게 또 죄를 지었다. 그 상황에서 한 점 잃었다고 경기 포기하지 않고 노히트노런 투수처럼 던지는 거. 하루 낭비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남은 저녁 시간 열심히 사는 것. 지금이, 내게 있어선 봉중근의 8회 피홈런 직후의 순간. 어머니 알뜰폰은 저녁 먹기 전에 이마트에서 샀다.

2013년 10월 18일

내 직업을 결정해 준 책(팟캐스트) - 6




[박샘의 위대한 수다 팟캐스트] '내 직업을 결정해 준 책' (듣기 클릭)

"개인적으론 이번 방송을 즐겁게 만들었다. 사실 녹음 때는 TV에 관한 뻔한 이야기가 오갈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신 피디만의 통찰과 남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을 통해 방송이 독특해 졌다. 사람들이 왜 신 피디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은 방송이었다. 그리고 이번 편집엔 기존에 쓰지 않았던 음악을 넣었다.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신 피디가 지루할 때 들었던 음악이라고 한다. 즐감하시길. 물론 조금 웃길지도 모른다. " _ 팟캐스트 PD 정도령 

"중독자가 중독자에게" _ 신동주PD 

2013년 10월 7일

『죽도록 즐기기』(원제:Amusing Ourselves to Death)

출근하면 한겨레신문을 읽는데 오늘 내가 일하는 사무실 6층 상황이 신문 '인사'란에 실렸다. 바로 옆에서 뵙고 보고 하는 이들의 이름이 신문에 실리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다. 조직개편이 있었다. 어제까지 CBS> 콘텐츠본부> TV국> 외주특집부>에서 일했다면, 오늘부터는 CBS> 선교TV본부> 선교제작국> 제작팀>에서 일한다. 후배 M이 제작해 오던 크리스천특강 C스토리를 이어 제작하게 됐다. M이 워낙 체계를 잘 잡아놓아서 그냥 숟가락만 얹는 그런 느낌이다. ( 약간 걱정이다. C스토리가 S스토리로 변하는 건 아닌지. S...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그 S 맞다 ㅋㅋ) 낮에 교보에 가서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이 쓴 『죽도록 즐기기』(원제:Amusing Ourselves to Death)를 샀다. 23년 전 이 책을 읽고 라디오PD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다음 주 월요일 팟캐스트 박샘의 위대한 수다 녹화때 이 책을 소개한다. 부제는, "내 직업을 결정해 준 책". 집에 분명 23년 전에 읽은 책 있을텐데 어젯밤 찾지 못했다. 책이 산더미로 쌓여 있어, 있다는 거 뻔히 알면서도 한 권 더 사는 슬픈 일이 최근 자주 발생한다. 녹화 때 그 얘기를 할 생각이다. 사당동 신혼시절, 총신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입사 시험 준비 하던 어느 날 SBS에서 전화해서 8시 뉴스 앵커 바꿔달라고 한 뒤 - 바꿔달라고 했더니 정말 바꿔줬다! - 내가 한 질문. 그리고 그 앵커의 답변.

2013년 10월 5일

서울농학교 - 1

내일은 어머니가 20년 넘게 교사로 재직하셨던 국립서울농(아)학교 100주년 기념식이 있는 날이어요. 학교는 효자동에 있어요. 교문을 들어서면 아주 큰 느티나무가 하나 있어요. 학교 본관 정문으로 들어가면 그 느티나무를 소재로 쓴 멋진 기념시가 걸려 있고요. 어머니가 쓰셨어요. 어떻게 끝을 맺는 게 좋을까, 제가 대학생 때 어머니가 고민하고 계시길래 제가 알려드렸죠. 제가 생각해도 멋진 맺음이었어요. 나중에 혹 농학교 방문하시면 감상해주세요. 내일 그 시 앞에서 어머니와 기념사진 한 장 찍을 생각이어요. 어쩌면 어머니와 저의 농학교 마지막 방문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20대의 여교사와 그의 어린 아들이 함께 뛰어놀던 곳. 

서울농학교 - 2

12시반에 고속터미널에서 어머니를 만났는데 무척 이쁘셨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하늘색 가디건, 주홍색 빵모자와 스카프). 경복궁 3번 출구에서 내리자 농학교까지 가는 차량이 대기 중. 차에 타는 순간부터 어머니, 사람들과 폭풍 수화 시작. 나만 외톨이ㅋㅋ학교정문에 들었섰더니 느티나무 보임. 어머니는 오래간만에 본 제자, 교사들, 친구분들과 끊임없는 인사. 그 중 한 분이, "문선생님, 저는 요즘도 매년 국어시간 첫 수업 때 느티나무 시로 수업을 해요" 오...! 어머니와 나만 기억하는 시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구나.(감동) 본관으로 올라가서 액자에 걸린 시 대면. 노란조끼 입은 수화 자원 봉사자 여성 둘이 시 앞에 서더니,읽더니, 사진 찍음. 어머니가 부끄러운 목소리로 "저는 이 학교에서 근무했고 이 시를 썼어요 ". 두 사람 엄청 놀람. 아 그러세요 아까 이 시 봤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옆에서 대화 듣다가 "결론 부분은 제가 썼어요"하려다가 그만 둠. 자원봉사자 두 명과 헤어져 운동장으로 나와 제막식에 참석.

<느티나무>

넌 가슴이 답답할 때
울지 않았지

넌 이곳에 태어난 걸
원망하지 않았지

넌 그 큰 비바람에도
자람을 멈추지 않았지

그래서 너는 이토록
자랑스럽게 하늘 우러러
우리들이 기댈 수 있는
친구가 되었어

(1991.10.2)

*농학교에서 오늘 이 시 다시 읽는데 왠지 말없이 가정을 지키는 아내, 밖으로만 돌다가 후에 아내의 존재에 고마와하는 남편에 대한 시 같다는 생각함 ;; (2013.10.3)

대학원 세미나 - 1

대학원 세미나 중이었다. 성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교육철학 시간이었는데 섹스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그때 내가 진지하게, 앞으로 섹스라는 말 대신 꼭 '부부 간의 섹스'라고 하자,고 했다. 부부 사이의 섹스가 아닌 건 (혼전,혼외) 죄이고, 그렇기에 세상에는 '부부간의 섹스'와 '죄'만 있을 뿐 그냥 섹스,라는 건 없다, 난 그런 죄가 포함돼 있을 수도 있는 중립적인 용어 사용에 반대한다. 라고 했다. 교수와 예닐곱명의 대학원생 모두 아무말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세미나는 다시 진행됐다. 23년 전 한 수업 시간 스케치이다. 한 근본주의적 크리스천이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대학원 세미나 - 2

아들이나 나나 종종 기독교에 대해 글을 쓴다. 근본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 글을 아들도 나도 종종 페이스북에 올린다. (서로 좋아요,는 누르지 않지만 서로의 글을 읽는다.) 오늘은 전화 통화하면서, 그런 비판의 글을 쓸 때 어떤 태도가 바람직할까에 대해 서로 이야기했다. 아들은 내가 옛날에 들려주었던 대학원 세미나 섹스 용어 얘기가 생각난다고 했다. 같이 웃었다. "그래. 아빠 엄청난 근본주의자였다. 그래서 아빠는 이제 어떤 근본주의자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 '과거의 나'에게 글을 쓴다고 생각하고 써. 아빠가 그랬거든. 과거의 나,를 조롱할 수는 없잖아. 사실 공격하거나 조롱한다고 타인이,근본주의자가,과거의 나,가 변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참 많이 걸려. 아빠 경우를 보면." 

2013년 10월 1일

직원 예배

기도는 주로 지하철에서 한다. 일어나서 바로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난 비몽사몽. 오늘은, 그제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를 다 읽었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 신비로운 우주를 만드신 그 분께, 당신은, 그래요, 당신은 정말 신비롭네요, 당신이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궁금하다,는 내게 있어서 찬양의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2인칭 대명사 당신,에서 걸렸다. 무례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님, 해봤다가, 아버지, 해봤다가, 그대는, 해봤다가. (점점 회사는 다가오고...) 아무리 해도 내가 살리고 싶었던 맛(내 마음)이 살지 않았다. , 정말이지 당신,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런 느낌있지 않은가, 부부끼리, 어느날 그윽한 눈빛으로, 당신은 정말 좋은 사람이야, 할 때 그런 당신). 그러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 영어로 하자. 그래, 영어로 하면 되겠네. 그래서 영어로 했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이 돌아가며 아침 예배 사회를 본다. 내일은 내 차례.모든 내용은 순서지를 그대로 읽는 것. 기도만 준비하면 된다. 한국어로 할 생각이다.


하나님 ,
이 자리에서 함께 기도하는 우리 직원들과직원들의 가정과,
우리 회사를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십시오.
저희를 풍요롭게 하여주십시오.
그래서헛된 곳에 손 벌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나너무 풍요롭게 하지는 말아주십시오.
차라리조금은 부족한 듯 하게 하여주셔서,
매사에 하나님을 기억하고의지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성실하심하나님의 신실하심만이
저희 직원과 가정과, 60주년을 맞는 우리 회사가
의지하고 자랑하는 풍요로움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2013.10.1.)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알리스터 맥그라스)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E. McGrath)24살에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 역사신학과 조직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과학의 문제에 대해 과학으로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신학자라는 평을 받는다.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원제: Surprised by Meaning: Science, Faith, and How We Make Sense of Things)사람들은 왜 그토록 범죄소설에 열광할까?” 라는 문장으로 시작. (p.1). 이어서 탐정소설이 엄청난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일견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깊은 열망을 풀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 탐정소설 작가 도로시 세즈의 말 인용.(p.2) 이 우주의 다양한 사실들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이론은 무엇일까,에 대해 묻고 답함. 69쪽에서 대학 입학 후 자신의 무신론이 흔들리는 상황 묘사하는데 무척 인상적. (지금 무신론을 비난하고 유신론을 지지하는 중 아님. 한 과학자가 과학의 한계에 대해 깨닫게 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중). 가장 신뢰하던 분야가 흔들리자 맥그라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이 부분 읽는데, C.S.루이스가 했던 말 떠오름. 유신론자에게도 신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 무신론자에게도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유혹이 올 때 자신의 유신론, 자신의 무신론을 지켜내는 데는 굳건함이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기억됨.) 같은 팩트를 놓고도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졌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는 걸 잘 제시하고 있음. 예를 들어 도킨스는 유전자의 존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 “ 유전자들은 거대한 영토 안에, 장대하고도 다루기 힘든 로봇들 안에 안전하게,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떼로 모여 거주하면서 , 구불구불하고 에두른 길들을 통해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원격 조종으로 그 세계를 조종한다. 유전자들은 여러분과 내 안에 있다. 그것들이 우리를, 몸과 마음을 만들었다. 그것들을 보존하는 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궁극의 이유다.” 이제 위 진술에서 유일한 팩트 유전자들은 여러분과 내 안에 있다만을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다른 종류의 설명으로 채운 글 하나 소개. “유전자들은 거대한 영토 안에 붙잡혀 있고, 대단히 지능이 높은 존재들 안에 갇혀 있으며, 외부 세계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 복잡한 과정들을 통해 외부 세계와 소통한다. 이 복잡한 과정들을 통해 마치 마술에 걸린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기능이 등장한다. 유전자들은 여러분과 내안에 있다. 우리는 시스템이며 이 시스템은 유전자들의 암호가 해독되게 해준다. 유전자들이 보존되느냐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만들어 낼 때 체험하는 기쁨에 온전히 달려있다. [바로] 우리가 유전자들이 존재하는 궁극의 이유다.” (데니스 노블, 옥스퍼드대학교 시스템 생물학자). 유전자, 우주의 기본상수, 빅뱅, 진화론, 의미 등에 대해 재미있게 서술. 13장인데 마지막 석 장(챕터)은 약간 설교 같아서 약간 지루함. 1장에서 10장은 일독을 추천. 지금 이 책 빌려달라는 후배 있어서 회사 3층으로 내려가려 함. 

2013년 9월 30일

38년만에 읽은 책(팟캐스트) - 5




 팟캐스트 <박샘의 위대한 수다>에서 책 소개 다섯 번째 녹화를 했다. (듣기 클릭)

2013년 9월 8일

『로마서 산책』(복있는사람)

쓰다듬고 있다. 관계를 가진 후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듯이 권연경 교수의 『로마서 산책』(복있는사람)을 다 읽은 후 내려놓지 못하고 손에 꼭 쥔 채 책 모서리로 내 턱, 내 얼굴을 누른다. “왜 유독 로마서일까? 데살로니가전서를 읽고 인생이 뒤바뀌었다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로마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끝이 없다”(p.16).

새벽기도회에 대해 - 4

1.이번 주말 내 머리에 새롭게 떠오른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 문제점 중 하나는 시작 시간이 너무 늦다는 것이다. 4시나 5시에 시작하면 안된다. 늦어도 새벽2시반에는 시작해야 한다. 
2.새벽 중계를 위해 머물던 모텔은 공기가 안 좋아 두통이 생겼다. 어제 새벽 4시반 중계차 안에서 타이레놀을 먹었다. 중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워 잤다. 저녁까지 자다가 일어나 저녁을 먹고 여전히 머리가 아파 다시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한겨레신문(2013.9.7.)을 읽다가 부끄러워졌다. [토요판/르포] 첫차를 타는 사람들, 이라는 기사였는데 청소 노동자들의 삶을 소개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버스 첫차가 이리 만원인 줄 몰랐다. 버스 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10~30대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여성이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고, 육안으로 판단한 나이는 60~70대였다.” “사람들 출근하기 전까지 청소 다 하려면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계약서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근무시간이 적혀 있어요. 청소하는 분들 중에 오전 6시부터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시간부터 일하면 첫차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타겠어요.” “청소노동자들의 삶의 여건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사 자료조차 없다. 민주노총이나 공공노조 등 국내 노동단체들은 청소노동자들이 국내에 40만명가량 있다고 추산할 뿐이다.”
3. 새벽근무 고작 이틀하면서 페북에 생색 많이 냈다. 부끄럽다. 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에 청소가 끝나야 한다는 이 관습, 방침 바뀌었으면 좋겠다. 40만명 중 적지 않은 수가 기독교인일 것이다. 노동하러 떠나기 전 그분들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원한다면, 새벽기도회는 몇시에 열려야 할까. 열릴 수는 있을까. 청소노동을 하는 분들은 참석하지 않아도 될까. 새벽기도회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새벽기도회는, 교회는, 무엇일까.

2013년 9월 2일

내가 끊은 남성잡지들(팟캐스트) - 4



              




















 
팟캐스트 <박샘의 위대한 수다>에서 책 소개 네 번째 녹화를 했다.(듣기 클릭)

2013년 8월 30일

성경의 권위에 대해 - 1

타블로의 펀치라인 중 죽이는 게 한두 개 있어요. "네 정신은 포장마차 싸움꾼, '병들었어'". 또 하나 소개하면, “넌 겨울에 반팔 티, ‘아마 추워’”. 제가 바로 겨울에 반팔 티 입고 신학 공부 하는 사람이어요!^^ 아마추어죠 ㅋㅋㅋ 저는 성경에서 불일치, 모순, 오류 혹은 요즘의 시각으로 볼 때 문제가 되는 주장들 (여성비하, 잔인한 구약의 하나님 등)을 발견할 때 하나님이란 분은 어떻게 이런 ‘불완전한 매체’(오탈자 발생하는 ‘글’과 당시의 과학과 세계관에 갇힌 ‘인간’)를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기로 결정하셨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이런 난관들을 제 신앙과 ‘합리적’으로 통합시켜야만 하는 흥미진진한 과제 앞에서 흥분하곤 하죠. ‘반팔 티’에게 도움을 주었던 책을 오늘 몇 권 소개하려고 하는데 가장 도움 받은 책은 C.S.루이스의 『시편사색 』(홍성사)이어요. 이 책에서 루이스는 왜 이방 신화에서도 성경의 부활 이야기와 비슷한 얘기들이 존재하는지, (그것도 그리스도의 부활 수 세기 전에 ), 잠언 등과 같은 지혜서에 발견되는 고대 이집트 지혜서 내용의 등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등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주제들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들려줘요. 하나님이 불완전한 매체,형식을 기꺼이 사용하셨는데, 이건 그분의 자발적인 행동 성육신과도 이어지는 결정이다, 라고 해요. 삶의 모든 차원에서 발견되는 성육신의 의미에 대해서 매혹적인 설명을 펼쳐요. 당신에게 사주고 싶어요 ! 숭실대 권연경 교수가 쓴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 』(SFC), 지그프리트 치머 교수가 쓴 『성서학이 믿음을 무너뜨리는가?』(대장간)도 성경의 다양한 모순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해석할 것인가, 성경을 우상화하지 않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주제에 대해 흥미진진한 논지를 펼치고 있어요. 적극 추천해요. 어제 비비빅을 세 개 먹고 잤어요. 오늘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어요..

2013년 8월 29일

사본학에 대해 - 1

오늘은 운이 좋았다. 수퍼에 비비빅이 있었다. 전부 다 집으니까 6개. 파시통통도 있지만 난 비비빅만 먹는다. 지난 번에도 6개를 사서, 내가 5개 먹고, 장모님 1개, 장인어른 0개 드셨다. 이번에는 꼭 4:1:1 을 지킬 생각이다. ( 2:2:2 는 장담 못 하겠다.) 집으로 오기 전 사무실에서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보낼 카드를 썼다. (친구가 한 명 어제 다리 수술을 받았다.) 카드에는 병상에 있을 친구가 보면 힘이 될 시편 구절을 영어로 썼다. NIV 영어 성경을 보고 천천히 베꼈는데 베끼면서 성경 사본학, 특히 필사 과정 중의 다양한 변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짧은 두 절의 시편을 카드에 옮겨적는 과정에서 난 세 번의 실수를 저질렀는데: 제일 먼저 , my God에서 my를 빼먹었다. 그 다음 절에서는 영어단어 힘(strength)의 스펠링을 틀리게 썼다. 처음 st 다음에 e를 하나 더 넣었다. 마지막으로, 수술과 재활 기간 동안 힘내라는 안부 인사를 하고 날짜를 쓰려다보니 이런, 수술은 어제 였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 날짜 대신 어제 날짜를 쓰고 내 이름을 썼다. 요한복음을 읽다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일이 마태,마가,누가복음서와 다르다. 어떻게 이렇게 핵심적인 사건에 대한 일시 증언이 다를 수 있을까, 의아할 수 있다. 나도 의아하다. 하지만 난 이렇게 성서에서 불일치,모순,오류를 발견할 때마다 실망스럽거나 곤혹스럽기보다는 약간 흥분이 된다. 이렇게 불일치,모순,오류가 있는 ‘불완전한’ 책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시기로 결정하신 그런 하나님을 내가 만나고 있구나. 불완전함에 자신을 내맡기는 신이라니! 그 분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땅에 오실 때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성육신하셨고, 자신을 계시 하실 때는 불완전한 매체, 불완전한 저자, 불완전한 기억력, 불완전한 문장(력) 등을 용인,감수,사용하시는 걸까? 신비롭다. 성육신하신 하나님, 겸손하신 하나님,이란 기독교 교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다.

새벽기도회에 대해 - 1

1.어느 날 하루 예수님이 새벽에 기도하셨다,는 사실을 근거로 새벽기도회를 창설하면 예수님이 놀라심. 
2.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마가복음1:35(새벽에 기도했다)이 아니라 마가복음 1:38임.( 여기를 떠나서 다른 마을로 가자). 온 동네병자들이 모였고(33절), 사람들이 주님을 찾아요,라고 제자들이 독촉하는데도(37절), 예수님은, 여기를 떠나 다른 마을로 가자(38절)라고 하심.내가 그것을 위하여 왔노라(역시 38절) 하심. 제자들(결국,우리들)의 요구,욕망,판단과는 다른 결론 내리심. 우리에게도 38절처럼 살라고 하심. 새벽에 기도하라는 게 아니심. 세습추구하며,대형추구하며,성공욕망하며 35절 한다면 그게 무슨 마가복음 해석인가. 38절만 살 수 있다면 위 본문에서 35절은 (심지어) 빼거나 ‘낮’으로 교체해도 무방. 38절 없이 35절만 행하는 건 이방종교. 35절 하면 자동적으로 38절 보장된다고 믿는 건 미신. (다음엔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는 시편 구절 사용법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어요.)

새벽기도회에 대해 - 2

새벽기도회를 지지해 준다고 자주 거론되는 성경 구절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시편57:8절이어요. “내 영혼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개역개정). 그런데 공동번역으로 보면 그 뜻 더 잘 알 수 있어요. “내 영혼아, 잠을 깨어라, 비파야 거문고야 잠을 깨어라. 잠든 새벽을 흔들어 깨우리라.” . 모든 게 잠들어 있어요. 내 영혼, 비파, 새벽. 이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잠(불신앙,두려움)에서 깨어나겠다고 해요. 다 깨우겠다고 해요. 불신앙의 깊은 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상징하는 새벽. 네, ‘새벽’은 여기서 부정적으로 쓰였어요. (새벽이 부정적으로 쓰인 시는 처음 봐요.) 새벽을 깨운다...이제 불신앙 그치고 신앙하라는 뜻이지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라는 뜻 전혀 아니어요~

새벽기도회에 대해 - 3

1. “뜰 신앙”은 단순히 주일 예배만 참석하는 교인이요. “성소 신앙”은 주일저녁과 부흥회에도 참석하는 교인이며, “지성소 신앙”은 하나님께 헌신적인 교인으로 새벽기도회에 참석한 교인이라고 말한다.” (오세호, 『새벽의 조용한 개혁-명성교회 성장과 새벽기도에 관한 연구; 그 말씀』, 1994.2 p.170) 중에서. 저는 이 글을, 지원용 교수, <한국적 샤머니즘에 가미된 한국식 기독교 전통, 새벽기도회 >에서 읽고 재인용하고 있어요. 이런 주장,설교,가르침은 한국교회에서 쉽게 들을 수 있어요 . 
2. 최근 한 유명한 신학교 운영이사회가 열리는 도중, 한 목사가 자기 교회의 부목사가 자신과 새벽기도회와 관련해 논쟁을 벌였다고 하면서, 그 부목사가 이 신학교에서 쓴 학위논문이 ‘새벽예배 무용론’이었다, 어떻게 이런 논문을 지도할 수 있느냐, 누가 논문의 지도교수였냐고 비판하는 일이 있었어요. 이사들 사이에서 지도교수를 징계하고 논문 학위를 취소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해요. (자세한 내용은 제가 바로 전에 쓴 글 댓글란에 링크건 기사를 참조해주세요) .
3. 올 10월에 열리는 WCC 부산총회에서 한국측 준비위는 새벽기도회, 통성기도, 수요예배를 한국교회의 영성을 대표하는 것으로 세계교회에 소개한다고 해요. 외국참가자들은 새벽기도회와 수요예배에 직접 참가하게 된다고 해요. (기독공보, 2013.2.25 참고).
4. 한국에서 새벽기도회는 신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 것 같아요. 특히 부목사들의 처지를 생각해볼 때 마음이 무거워요. 지금 한 시간 동안 한국교회의 영성을 대표할 게 뭘까, 혼자 생각해보고 있어요.

2013년 7월 19일

정기적으로 읽는 책들 (팟캐스트) - 3

2013년 7월 15일








팟캐스트 <박샘의 위대한 수다>에서 책 소개 세 번째 녹화를 했다. 두 아들도 같은 방에서 내 이야기를 들었다. '정기적으로 읽는 책들' (듣기 클릭)

2013년 7월 15일

6. 당신의 럭셔리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첫사랑'하면 '뛰다‘(가슴), '맞다’(소나기), '젖다‘(교복), '꼬옥 쥐다’(떨리는 손) 같은 동사(動詞)만 알고있던 제게 남성잡지 <GQ> 는 첫사랑을 묘사하는 낯선 동사 하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건 '빨다'라는 동사입니다. "정성스레 발가락을 빨아주었던 첫사랑을 떠올렸다" ( <GQ> 한국판 2008년 8월호,「첫 섹스의 비용」중에서). '첫사랑-빨다-발가락'이라는 이 조합은 제 상상력(그러니까 제 인생이 되겠네요)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 넘었습니다. 하나, 그렇다고 그날 제 상상력의 부족이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미처 무언가를 상상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던 때는 따로 있었습니다.

2. “식량은 비싼 데 비해 삯은 쌌기 때문에 번 것은 모두 먹는데 들어갔습니다. 그는 아내와 같이 번갈아 입는 털외투가 한 벌 밖에 없었으며 그것도 다 해져 누더기가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새 털외투를 지을 양털을 사려고 벌써 2년째나 벼르고 있었습니다.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중에서). 저는 잠시 책을 덮었습니다. 안 입는 옷으로 꽉 찬 옷장 앞에서, '몸을 가릴 무언가를 사기 위해 2년을 벼른다'는 문장 앞에서, 이런 문장을 떠올려보지 못한 저의 중산층적 상상력 앞에서, 네, 세묜과 마뜨료냐 부부 앞에서 그날 몹시도 부끄러웠습니다.

3. 추위와 싸우며 '2년' 넘게 기다려야 하는 사람은 세묜 부부 만이 아닙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사만다 존스, 지금 에르메스의 버킨백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직원 말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에 수천만 원하는 럭셔리 백을 사려는 사만다를 비웃을 생각 없습니다. 그녀도 지금 일종의 <정신적 추위>에 떨고 있는 중일 테니까요. 다만, 악어 가죽으로 정신적 추위를 막을 수 있다는 식의 얘기를 <누가 퍼트리고 있는지>, 어떻게 하다가 사만다가 <그런 꾐에 넘어가게 된 건지>, 그 얘기는 좀 해볼까 합니다.

4. “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야기(story)”이며, “그런 의미에서 에르메스는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이다. 조선일보 기자 K가 에르메스사(社)의 패트릭 토마 회장을 인터뷰하고 쓴 기사의 일부입니다. 에르메스쪽에선 K기자의 이런 평가(에르메스에는 스토리가 있다)와 이런 호칭(에르메스는 이야기꾼이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반길 겁니다. 평소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쉬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에르메스의 아트디렉터 파스칼 뮈사르가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이야기를 빼고는 에르메스를 말할 수 없습니다.” 최고경영자(CEO) 패트릭 토마 회장, 이 남자는 산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詩)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바로 뒤에 이어지는 문장은 “그러면서 우리는 최고의 경영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결국 토마가 하려는 말은, 단순히 물건만 파는 타사(他社)는 이야기, 그것도 시의 경지에 이른 이야기를 파는 자사(自社)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것이겠지요. 최고운영책임자(COO) 악셀 뒤마는 - 이 사람은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의 6대손인데 토마 회장의 뒤를 이을 최고경영자로 내정됐어요 -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가 “듣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들합니다. 이야기, 시(詩) , 상대의 이야기 귀 기울여 듣기. 이런 말 듣고는 누가 이들을 가죽가방이나 스카프 만드는 회사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까, 소설 혹은 시집 내는 출판사 직원이라고 생각하지.

5.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에르메스 스카프는 제게 가만히 말을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소곤소곤 … ” 에르메스 상품 구매자 동아일보 기자 K의 이 글에서도 에르메스는 <이야기하고> 있고, 구매자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당신은 에르메스의 어떤 이야기와 함께 살아오셨나요.” 그러니까 이들의 말에 따르자면 우리의 사만다는 백을 <들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 됩니다. 삶의 혹한을 막아줄 그 어떤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 믿고- 우리의 사만다, 2년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6. 매춘 조직 ‘파멜라 마틴 & 어소시에이츠’를 운영했던 데보라 팰프리도 자신이 제공하는 건 섹스가 아니라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먼 여행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감으로 거론되던 뉴욕 주지사 엘리엇 스피처(남, 당시 48세)는 다이아몬드 7등급 콜걸 애쉴리 듀프레(여, 당시 22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워싱턴 메이플라워호텔 871호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서 오세요”. 애쉴리 듀프레가 문을 엽니다. 아니, 애쉴리가 전화를 받고 왔을테니 전화를 건 스피처가 문을 열어주었겠네요. (자, 스피처가 문을 엽니다). 여자와 단둘이 섰을 때 스피처는 제일 먼저 "벗어"라고 했을까요, "들려줘"라고 했을까요. 데볼라 팰프리의 주장에 따르자면 남자는 후자를 요구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러고보니 말끝마다 이야기 운운하는 럭셔리회사와 매춘조직의 판매 품목이 겹치는군요. 포주는 <싱싱한> 이야기를 공급하고, 럭셔리회사는 <오래가는> 이야기를 판다는 사소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7. 그럼, 다시 메이플라워호텔 871호실. 절정의 순간에 여자의 손톱이 남자의 등에 < 깊고 긴 자국> 을 남깁니다. 과연 이 깊은 자국은, 두려운 세상, 무료한 세상에서 남자가 의지할 삶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스피처, 따끔거리는 등의 감미로운 통증을 음미하며 택시 뒷시트에 더 깊숙이 등을 기댑니다.

2013.7.15.
신동주


서플먼트

1) <GQ> 한국판 2008년 8월호에 실린 섹스칼럼 「 첫 섹스의 비용 」은 남녀 두 사람이 함께 썼는데 상기 첫사랑과 발가락 이야기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 김지현이 쓴 「 여자의 이야기 」편에 등장한다. 톨스토이 단편은 창작과비평사가 1981년에 발간한 ‘창비아동문고 30번 똘스또이 동화선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인용.

2) 본문에 등장하는 인용문들의 출처와 기사 제목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야기(story)”와 “그런 의미에서 에르메스는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은 2009년 5월6일 <조선일보> 기사 「명품 위의 명품 '에르메스' CEO 파트릭 토마女心을 흔드는 '든든한 백'」에서 인용. 에르메스의 아트디렉터 파스칼 뮈사르의 인터뷰는 <뉴욕타임스>에서 운영하는 블로그 티매거진 2011년 9월29일자 기사 「 Waste Not, Want It 」에서 인용. 원제목 “Hermès is all about stories”를 “이야기를 빼고는 에르메스를 말할 수 없습니다”라고 의역. “우리는 시(詩)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는 <월스트리트저널> 2011년 8월25일자 기사 「에르메스의 전투」에 실림. 원문은, “We try to do poetry and we get excellent economic results.” 최고운영책임자 악셀 뒤마의 “듣는 능력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GQ> 영국판 2011년 12월8일자 기사 「Hermès and the secret of luxe appeal」에서, “에르메스 스카프는 (…) 당신은 에르메스의 어떤 이야기와 함께 살아오셨나요”는 <동아일보> 2010년 1월29일자 기사「에르메스가 올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에서 각각 인용.

3) 2008년 3월 10일, 엘리엇 스피처와 그의 아내 실다 스피처는 카메라 앞에 함께 섰다. 엘리엇, 성매매에 대한 잘못 시인했으나 뉴욕 주지사직 사임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 11일, 제임스 테디스코 뉴욕주 공화당 원내대표, 탄핵안 발의하겠다며 스피처의 자진 사퇴 촉구. 12일, 엘리엇, 다시 카메라 기자단 앞에 서서 - 이번에도 아내 실다 대동 - 뉴욕 주지사직 사임 발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사진은 12일 아닌 10일 사진. 한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한동안 나는 그녀가 매고 있는 스카프를 바라보다가 그 옆에 서 있는 사내에게로 시선 돌림. 그리고 내 시선 - 아주 천천히 - 그의 얼굴에서 그의 고급 양복, 그의 고급 넥타이, 그의 고급 벨트, 그의 고급 시계, 그의 고급 구두 - 그리고 이제부터는 상상인데 - 그가 아침에 타고온 고급 승용차, 그 차 안에 내려놓았을 고급 가죽 가방, 그 가방 안에 들어있었을 사임서, 그 사임서 작성했을 고급 만년필을 상상. 이야기를 판다고 하는 건 에르메스만이 아닐진대, 지금 언급한 모든 사치품 제조사들 역시 다 이야기를 판다고 할 게 분명할진대, 이렇게 많은 고급 <이야기들> 속에 둘러싸여서도 한 남자, 구원 받지 못했다. 묻고 싶다,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이야기>라고 불러도 되는지. 난 안 된다고 생각. 그것은 그저 “끼어든 것, 삽화, 간주(間奏), 토막 이야기. 큰 흐름에서 벗어난 해프닝”. (정희진, < 한겨레신문 > , 2013.7.12. ,「정희진의 어떤 메모 – 에피소드」에서). 

4) 176년에 걸친 에르메스의 마케팅의 성과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내가 내린 결론: 에르메스는 동사(動詞)를 바꿨다. <판다>라는 동사를 <들려준다>로, <산다>라는 동사를 <듣는다>로 바꾸는데 성공. 그 결과? 비싼 사치품을 사며 내심 부끄러워하던 사람들,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됨. 무리해서 럭셔리를 사는 사람, 이제는, 자신을 구원해 줄 이야기 듣고자하는 심령 가난한 사람으로 재등극. 순식간에 <가진 것> 다 팔아 <정신적인 것>과 바꾸는 사람으로 재평가됨. 사지 않는 – 그러니까, <듣지 않는> - 옆 사람이 괜히 부끄러워짐. 에르메스의 이 성공적인 마케팅에 대한 나의 평가? 500년 전 요한 테젤의 면죄부가 <면죄>라는 단어 타락시켰듯이, 에르메스의 마케팅, <이야기>라는 단어 타락 시킴.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지금 광화문 사거리에 버킨백 95개 걸어놓고, 그 95개 악어 가죽 가방에 굵은 대못 95개 박을 사람. 

5)  <이야기>를 듣고자 먼 길 떠났던 사람 한국에도 있음. 사내가 택시에서 내린 곳은 남도의 항구 도시에 있는 한 싸구려 사창가. 이제 남자가 마주한 여자는 더 이상 ‘걸’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마흔 중반의 여인. 남자와 여인은 한 요 위에 같이 앉았는데 "반평쯤 될까 싶은 골방의 얇은 요에는 숱한 사람들이 밤마다 흘렸을 체액이며 분비물의 흔적"들이 묻어 있었고 "고리타분한 냄새를 풍기고 있"음. 남자는 심한 ‘욕지기’를 느꼈지만 여자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들음. “나이가 마흔이 넘응께 / 이런 징헌 디도 정이 들어라우. / 열여덟살짜리 처녀가 / 남자가 뭔지도 몰르고 들어와 / 오매, 이십 년이 넘었구만이라우. / 꼭 돈 땜시 그란달 것도 없이 / 손님들이 모다 남 같이 않어서 / 안즉까장 여그를 못 떠나라우. / 썩은 몸뚱어리도 좋다고 / 탐허는 손님들이 / 인자는 참말로 살붙이 같어라우. ” 욕지기를 견딜 수 없었던 사내는 여자에게 술을 청해 같이 마심. “술을 마시는 동안 그녀는 묻지도 않은 여러 이야기들을 나에게 건네 주었다”. 그 사내는 후에 이렇게 고백. "만일 내가 사람살이에 있어서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사랑 또한 그렇게 된다면, 나의 재출발은 바로 늙은 창녀의 이 말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 터이다." (송기원,『마음속 붉은 꽃잎』,창작과비평사, 1990, 「살붙이」전문과 ‘후기’ 일부 인용). 나는 늘 이야기란 무엇일까, 궁금했음. 남자는 여자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확연하게 내 자신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고 고백. 남자의 이 고백,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훌륭한 정의(定義)라고 생각함. 내 자신의 얼굴을 보게 만드는 것.

6) 1994년 제6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자이자 전(前)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하종강. 「고문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에서 그는 함께 노동운동 했고, 함께 고문 당했던 후배 송영수와 나눈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줌 : 

"형은 그 일을 20년 넘도록 계속하고 있는 이유가 뭐요?” 나는 조금 생각해 보고 진지하게, 그리고 폼 나게 답했습니다. “나는 아직 <세계관>이 바뀌지 않았거든. 나는 내 철학을 바꾸지 않았거든.” 그는 내 말을 듣고 픽 웃더니, 잠시 시간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면 나는 운동을 벌써 포기했을 거예요. 나는... 말하자면... 하선배에 대한 미안함... 그런 것들 때문이었어요. 그거 아세요? 내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자꾸 형 생각이 나는 거야. 그때 나 때문에 고문 당했던 사람들, 나 때문에 징역 산 사람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노동자들 (…) 그런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 나를 붙드는 거야.” 

7) 시인 송기원이 자신의 얼굴을 보았고, 노동자 송영수가 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면, 나의 젊은 시절 역시 얼굴과 씨름한 시간이었다.(하나, 정녕 그걸 얼굴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조금이라도 <비기독교적>인 것에 영향 받거나 오염될까 두려워서, 내 앞에서 지금 웃고 눈물 흘리고 있는 이웃의 얼굴들을 소위 <기독교 세계관>에 따라 <분석>하고 <검토> 하던 내 전반부 인생. 내 눈엔 상대의 <얼굴> 안 보였고 대신 비(非)기독교, 반(反)기독교 혐의 물씬 풍기는 죄인들의 <몽타주>뿐.  

8) 한국의 교회들 사이에서 수십 년째 꺼지지 않고 불고 있는 ‘기독교세계관 운동’ 열풍. 이 운동의 교과서 역할을 했던 책들의 < 개정판 > 들이 최근 속속 출간됨. ‘기독교세계관을 위한 기초’ 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창조 타락 구속』(개정판)도 그 중의 하나. 저자는 “본문을 약간 손질했고” , 전작(前作)이 세계관의 ‘이야기라는 속성’을 간과했다는 점 깨닫고 세계관의 이야기성을 강조하는 <후기>를 덧붙였다고 밝힘.  나 여기서 실소(失笑).  도구적 이성을 비판했던 하버마스는 이런 말을 했음. "현대 사회에도 ‘윤리’가 존재한다. 단, 그저 하나의 항목(category)으로만." 현대사회에서 윤리는, 그저, 고려해야 할 수많은 항목 중 하나에 불과. <이야기>란 - 전작(前作)에서 빼먹었으면 - 개정판 후기 혹은 챕터 파이브에 <추가>할 수 있는 그런 것일까. 진정 이야기를 만난다면 – 이야기란, 만나면 내가 흔들리는 것일진대 – 우선 저자가 흔들리고, 저자가 썼던 이전의 글들이 <흔들려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