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H2 > 는 오래전에 봤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다시 전34권을 다시 보았습니다. 제가 옛날에 왜 < H2 >를 좋아했는지, 이번에 볼 때 이해가 되었습니다. 전 < H2 > (혹은 일본만화)의 일상성이 마음에 듭니다. 한 낮 주택가의 정적, 혹은 점심때 혼자 컵라면을 끓여먹는 (소리없는) 전 과정...이런 것들이 마음에 듭니다. < H2 > 에서는 (제 기억이 맞다면) 겨울이 나오지 않습니다. 항상 한 여름, 매미의 울음 소리. 계속 반복되는 그 땡볕의 주택가 풍경. 한 곳에서는 심각한 사건이 벌어지는데, 또 한 곳에서는 이렇게 지루한, 평소와 똑같은, <풍경>이 존재합니다.
2. 저는 한 종교를 믿고 있는데, 그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은 아닌데, 한국<의> 그 종교는 이상하게 감정이 고양된 클라이맥스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 그러니까 <지루함, 따분함, 똑같음, 일상적인 것들>을 다루는, 다루어<주는> 일본만화 < H2 > 에 고마워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교회에서 못받는 위로를 전 일본만화에서 받습니다. (앗, 제 종교를 말해버렸네요 -.-;;)
3. < 4년생 > 과 < 5년생 > 에서 맘에 드는 점은 <긴장감>입니다. 오래전에 보았던 이 만화도 이번에 다시 보았습니다. 역시 좋았습니다. 이 남자가 그리는 만화.....등장인물들의 얼굴이 긴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그 주인공들이 나를 닮았는지, 아니면 내가 그들을 닮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 전 목욕을 마치고 나서, 그 긴 목욕시간 동안, 제가 어금니를 꽉 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왜 이렇게 긴장하고 있을까,나는.
4. 이 < 4년생 >,< 5년생 > 에서 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작가가 섹스를 묘사하는 방법입니다. ( < 5년생 > 제4권의 섹스장면이 제일 맘에 듭니다.) 왜 (어떻게보면 밋밋하다고 할 수 있는 그 컷들이) 그렇게 맘에 다가왔나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느린 템포"에 비밀이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만져봐도 돼? 라고 묻고, 또 멀뚱멀뚱. 또 조금 진전이 있고, 또 멈칫. 컷과 컷 사이에 숨겨져있는 숨은 대화들. 양쪽이 항상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도 아닙니다. 갑자기 한 사람이 울음을 터트리기도하고. 좀 부담스럽니다. 이 만화는. 그것이 매력이겠죠. 이 만화를 보다보면, 나는 살면서 오르가즘을 연기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기가 아닌, 실재를 보는 '맛'이 < 4년생 >,< 5년생 > 에 있습니다.
* 후기: 상기 글을 쓴 때는 2001년도 봄 이었습니다. 제가 글을 올린 곳은 안티조선 싸이트인 < 우리모두(urimodu.com) > 내의 커뮤니티 < 만화방 > 이었는데 얼마 뒤 < H2 > 에 겨울이 등장한다는 답글이 올라왔습니다. “히로와 하루까가 눈집을 짓고 거기 앉아서 차를 마시는 대목이 기억납니다.” < H2 > 를 그린 작가는 아다치 미쯔루이며 < 나인 > , < 러프 > , < 터치 > 등을 그렸습니다. 그는 제20회 小學館漫畵賞(소년소녀 코믹스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 5년생 > 과 < 4년생 > 의 작가 시모쿠 키오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오타쿠들의 생활을 그린 < 현시연 > 이 유명합니다. 더 이상 목욕을 할 때 어금니를 물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