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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8일

역사적 예수 2


요즘 출퇴근길에 읽고 있는 책은 역사적 예수(게르트 타이센 지음,손성현 옮김). 192쪽에 참 멋진 지적이 나온다. " 예수에 대한 묘사 가운데서 모든 구체적인 개별 진술들은 저마다 개연성의 정도가 다르다. 불가피하게 모든 예수 이미지에는 가설적인 것이 지속적인 아우라를 조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가설적 성격과 화해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예수 이미지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가설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설적인 것이 실재의 구조에 아주 깊이 뿌리 박고 있다면 우리는 그 가설적인 것을 거부해야 할 이유가 없다. "

"가설적인 것이 실재에 아주 깊이 뿌리 박고 있다면", "가설적 성격과 화해해야 할 것이다" . 이 멋진 지적에 "가설"이란 말이 쓰인다고 해서 우리가 결코 살아가면서 ""이나 "진리"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 해석해선 안된다. 난 타이센이 말하는 "우리가 화해해야 할 가설"에서, 마이클 폴랴니가 말하는 "인간적 지식"(personal knowledge)을 떠올린다. 타이센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폴랴니는, 객관적 진리를 찾는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객관적 지식 안에 필연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지식의 "인간적 측면""화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적인 것이 객관적인 것 안에 아주 깊이 뿌리 박고 있다면, 그 인간적인 것을 거부해야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