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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3일

1. 당신의 8할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 "열대과일 같았던 제니의 가슴을 기억한다. 비키니 속으로 내려다보였던 분홍 유두가 생생하다. 오늘은 내 방에서 자고 가라던 대담함을 기억한다." 남성잡지 < GQ > 한국판 2008년 11월호에 실린 ‘중국 여인과 일별함’이라는 섹스 칼럼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이 잡지사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 한 명이 태국 해변가에서 젊은 중국 여성을 만나 하룻밤을 보내고 쓴 이 글을 읽어보면, 상하이 출신의 그 중국 여성은 그날 밤 이 한국 남성 위에서 '절정'을 맞은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 < 색, 계 > 처럼 아크로바틱하진 않았지만 탕웨이만큼은 뜨거웠다. 제니는 내 위에서 절정이었다."

2. 괜히 심술이 납니다. 저랑 하는 것도 아닌데 한 젊은 여성이 절정을 맞았다니. 언젠가 소설가 공지영이, 자신의 딸이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말에 하나 같이 다들 싱글벙글 하는 남자 친구들에게 이렇게 물었다죠. "우리 딸이 연애하는 거 싫으니?" "그럼! 남자는, 어떤 여자든 애인 생겼다면 싫어." 공감가는 그 남자들 대답에 책을 읽다 혼자 웃었습니다. 네, 지금 한 여성이 남자 밑에서(아니, 위에서) 절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겐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절정이 아니라 절망이었겠지...딴죽도 걸어 봅니다. 어쨌든 그 중국 여성의 절정 유무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맺으려 합니다. 그 섹스 칼럼에서 제 시선을 잡아끈 대목은 사실 따로 있었고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관계를 갖기 몇 시간 전 해변가에서 키스를 나눴는데 남자는 그 상황을 이렇게 딱 한 줄로 묘사합니다. “이때 키스한 것은 팔 할이 술 탓, 나머지 이 할은 바닷바람 탓이었다.”

3. 1941년 서정주가 자신의 첫 시집『화사집(花蛇集)』에 실린 < 자화상(自畵像) 〉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라고 선언한 후, 사람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세상사와 인생사를 ‘팔 대 이’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 누군가에게 이 세상사를 칠 대 삼이나 육 대 사가 아닌 팔 대 이로 나눌 권리가 왜 없겠습니까마는 저는 한 잡지사 남자 직원의 글을 읽으며 서정주가 보여주었던 시적 긴장감을 제대로 '도둑질'해오려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라는 문장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시인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나머지 '이할(二割)의 내용'을 밝히지 않은 데 있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만약 서정주가 '이할'의 내용마저 다 밝혔다면, 이미 밝힌 '팔할'의 내용(바람)과 더불어, 한 남자를 키운 것이 십 할, 즉 백퍼센트 밝혀지는 아주 희한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삶에 '알 수 없(다)는 것'이 들어설 여지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십 할, 백퍼센트, 남김없이' 설명해버릴 수 있는 것이 당신의 삶이라면? 그런게 당신의 사랑이고, 그런게 당신의 배신이라면? 누군가 저에게, 너에게는 더 이상 미지의 영역이 없어,라고 말한다면 저는 모욕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을 십 할까지 파악·묘사할 수 있다는 신념은 그렇게 얄팍할뿐더러, 종종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4. 1982년 이탈리아의 극좌파단체 < 붉은 여단 > 은 로마 외곽에 위치한 레비비아 교도소를 습격합니다. < 붉은 여단 > 은 이곳에서 제르마나 스테파니니라는 여성을 납치했고요. 레비비아 교도소에 수감돼있던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에 제르마나가 가담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던 제르마나는 장애인 특례 제도에 따라 교도관으로 뽑혔고, 교도소 내에서 소포와 우편물을 수감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67세였습니다. “울음을 그쳐! 지긋지긋해. 반복해서 말하는데 울음을 그쳐. 당신은 어느 누구의 동정도 살 수 없어." < 붉은 여단 > 이 자체적으로 녹음한 혁명재판 테이프를 들어보면 < 붉은 여단 > 의 그 누구도 장애를 가진 그 노인의 변명을 들으려하지 않습니다. 납치 한 달 뒤 제르마나는 총살됐습니다.

5. 프랑스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는『사랑의 지혜』에서 위 사건을 소개하며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들이 제르마나를 처형하기 전, 그들의 지식이 이미 제르마나를 점령하였다. 제르마나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녀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르마나 스테파니니가 누구인지를 그 본인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알랭 핑켈크로트가 미당의 시를 알았다면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을지도 모릅니다. " < 붉은 여단 > 은 제르마나를 '십 할' 파악했다고 자신했다".

6. 조금의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 꽉 막혀있는 '계량(計量)의 언어'로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당신과 나의 삶을 잡아낸 미당, 그는 정녕 시인이었습니다. 비록 계량 수치를 사용하지만 서정주는 인생을 '십 할', 즉 '백퍼센트'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서정주는 설명할 수 < 없다고 > 말하는 중입니다. 인생의 모호함과 불투명함에 대한 응원과 지지, 그게 미당의 시였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팔 할이 술 탓, 나머지 이 할은 바닷바람 탓"이라는, 서정주의 시어(詩語)로 한껏 치장한 이 문장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무척이나 비(非)서정주적입니다. 저는 제 키스를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제가 끝내 모를 것들이 언제까지나 섞여 있습니다. 저의 선에는 악이 섞여있고, 저의 용기에는 비겁이 섞여있고, 저의 기독교에는 비기독교가 섞여 있습니다.

서플먼트
1) 공지영과 그녀의 친구들이 나눈 대화는 그녀의 저서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한겨레출판사, 2009년) 중 '그의 거짓말은 내 탐욕을 먹고 산다'에 나온다.
2) 서정주의 < 자화상 > 이 주는 시적 울림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우리가 그 나머지 2할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이야기의 ‘개수’도 모른다는 점에 주목해 보는 것이다. 개수가 적시되지 않은 2할은 영원히 복수(複數)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세상 60억 개의 이야기가 다 담긴다. 서정주의 2할은 8할 보다 작지 않다. 8할과 경쟁하지도 않는다.
3) 상기 섹스 칼럼을 읽는데, 갑자기 '절정'이 아니라 '절망'을 느낀 여성을 한 번 창조해보고 싶어졌다. 칼럼의 일부 묘사를 겹따옴표를 사용해 그대로 인용하되 (내 눈에 어색한 표현도 그대로 놔뒀다) 여성의 시점에서 새롭게 구성했다. 아래 내용은 전적으로 허구이다.
4) 언젠가 태국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해변에서 키스를 하고 우리는 방갈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나의 "머리를 귀 뒤로 넘기다, 어깨에 잠시 머문 손으로 미니 드레스 어깨 끈을 어깨 밖으로 밀어냈다". 드레스가 마루 위로 흘러내리고 "검은색 팬티만 입고 선" 나를 남자가 뒤에서 안았다. 남자의 성기는 발기해 있었다. 남자가 혀로 내 등을 핥기 시작했고 난 내 젖꼭지가 점점 단단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혀끝이 가슴에 [와] 닿았을 때" (상기 칼럼에서는 이 순간 '한숨 소리'가 여성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되어있다) 갑자기 나도 예상하지 못한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왔다. 해변에서 왜 내게 키스 했어? 남자는 내 귓속에 뜨거운 숨결과 함께 에이티 퍼센트 윈드, 투웬티 퍼센트 와인,이라고 속삭였다. 내 몸은, 빠르게 식어갔다. 꼿꼿하게 위를 향했던 젖꼭지가 어느새 고개를 숙였다. 과녁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는 걸 죄(罪)라는 단어의 어원으로 삼는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대로라면, 그는 죄를 지었다, 내게. 과녁을 비껴간 화살처럼 나의 성감대를, 아니 나의 그 어디도 맞히지 못한 그의 언어. 나는 천천히 바닥에서 검정 팬티와 드레스를 주워 꿰고는 멍하니 서 있는 그를 뒤로 하고 방을 나왔다.  밖은 후덥지근하고 더웠다. 갑자기 지독한 외로움이 엄습했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