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4월 30일

애니메이션 < 바람의 검심(추억편) >을 보고.

1. 20대에 자주 썼던 말이 "외롭다, 혼란스럽다, 방황하는 중입니다" 등이었다면 요즘 30대에 들어선 제가 자주 쓰는 말은 단연코 <피곤하다>입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피곤합니다. 흑흑흑. 그리고 30대에는 '자주 쓰는 말'뿐만 아니라 '자주 보는 영화'에도 변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2. 요즘 < 살인의 추억 > < 터미네이터3 > < 매트릭스2 > 같은 화제작들의 개봉이 줄을 잇고 있지만 제가 영화를 하나 본다면 < 갈갈이 삼형제와 드라큘라 > 가 될 확률이 큽니다. 아내가 애들 둘을 데리고 < 니모를 찾아서 > 를 본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렇죠, 뭐. 다른 30대 부부들처럼 이렇게 아이들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도 아이들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영화 보겠다고 DVD 플레이어를 살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사준 게임기에 DVD 플레이어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됐습니다. 제가 자랑을 했더니 옆자리 후배 K가 DVD를 하나 빌려줬구요. < 바람의 검심 > 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어느날 밤 거실에 혼자 앉아 플레이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날도 무척 피곤했습니다). 자신의 약혼남을 살해한 남자 검객을 사랑하게 된 여자가 등장했습니다.

4. 남자의 품에 안긴 여자는 죽어가면서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단도를 집어듭니다. 여자가 남자의 뺨에 가로로 상처를 냅니다. (왜 그랬던 것일까요?) 이미 남자의 뺨에는 세로로 난 칼 자국이 하나 있었기에, 이 가로 상처가 더해지면서, 상처는 십자가 형태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기독교적 상처‘가 탄생한 걸까요? (농담입니다). 어쨌든 이 애니메이션의 제4막 소제목은 '십자 상처(十字傷)’입니다.

5. 첫 번째 세로 칼자국은 남자가 '확신'에 차서 사람들을 죽일 때 얻은 상처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을 칼로 죽였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얻었습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칼로 세상의 악을 다 잘라내야 한다고 확신하던 때, 남자는 부지불식 간에 여자의 약혼남까지 죽였어요. 이제 자신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날을 대신 몸으로 막는 여인을 보며 - 그리고 자신의 품에서 그 여인이 죽어가는 걸 보며 - 남자는 <흔들립니다>. 남자는 그 순간 절망한다, 고뇌한다, 비통해 한다,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상하게 제 눈에 남자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제 자신이 최근 흔들리고 있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저의 20대 삶 대부분을 지배했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제 안에서 많이 흔들려서 그런가 봐요.

6. < 어리석은 확신 > 을 상징하는 남자 뺨의 세로 칼 자국.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그 위에 가로 칼 자국을 냅니다. 옆자리 후배 K는 그 장면을 놓고 < 한을 풀어주는 > 상처 내기라고 했는데 저는 똑같은 그 장면이 < 부끄러움을 씻어주는 > 상처 내기로 보였어요. < 세상을 백퍼센트 기독교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았다는 확신에 차서, 그렇게 세상을 보지 못하는 <오염된 이웃들>을 내심 무시했던 저의 20대. 그때 가졌던 어리석은 확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이상하게 씻겨나가는 것 같았어요, 여자가 남자의 얼굴에 가로 칼 자국을 그어주는 장면을 보는데.

7. 후배에게 DVD를 돌려준지 꽤 지났는데도 영화를 봤을 때 받은 감동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영적 전투'와 '선한 싸움'을 치르고 있는 많은 크리스천 동료들 뺨에는 어떤 상처들이 나 있을까 궁금합니다. 세로 상처뿐일지 아니면 가로 상처도 있을지. (그런데 나에게는 과연 가로 상처가 있기는 한 걸까? 여전히 확신에 찬 세로 상처만 있는 거면 어떡하지? ) 어떻게 글을 맺을까 고민하며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며칠째 수염을 깎지 않아 꺼칠꺼칠해 진 뺨에 손을 대보았습니다. 그 어떤 칼자국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끝)



* 30대 후반에 한국기독학생회(IVF) 학사회에서 발행하는 <소리>지에 기고한 영화평입니다. 30대...(또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