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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8일

사슴사냥 2


사슴사냥 2.
단 한 발의 총소리와 함께 사슴이 <사라졌다>. 사슴이 사라졌다. 사슴이 사라진 것이다. 어찌 지금 내가 질질 끌고 가는 이 육질 덩어리를 사슴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사슴은 사라졌고, 난 파란 비닐봉투에 고기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끄는데 무거웠다. 나무 밑에서 브룩스는 능숙하게 사슴의 배를 갈랐다. 좌우로 열어 제친 사슴의 가슴에는, 숲에 굴러다니던 굵은 나무 가지를 끼워넣었다. 두 손으로 내장을 들어냈다. 껍질을 벗기고 고기를 잘라냈다.여기가 텐더로인이야. 포크로 썰 수 있을 정도로 연하지. 아유 오케이? 어떤 사람은 이런 거 보기 힘들다고 하던데. 난 괜찮다고 했다. 사실 괜찮았다. 며칠 전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앞 못보는 노래하는 가인에게 기름기 많은 부위를 집어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제일 마지막으로 머리를 잘랐다. 여러번 도끼로 치자 목이 떨어졌다. 파란색 사냥허가증에 오늘 날짜를 쓰고 싸인을 한 뒤 돌돌 말아 사슴의 왼쪽 귀 깊숙이 집어넣었다. 허가증이 빠지지 않게 그 귀를 움켜쥐고는 청테이프로 두 번 감았다. 귀가길에 혹 경찰이 요청하면 허가증이 든 머리를 주면 된다. 그 머리를 내가 잡고 있었다. 아직도 눈을 뜨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빨래를 돌리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다가 깨달았다. 어제 사냥에 빠진 게 무엇인지. 사슴과의 <만남>. 헤어질 수 있어야, 헤어질 수 있게 해주어야 만남이다. 봉투에 넣어 데려오는 건 만남이 아니다. 몇 해 전, 사슴과 <헤어진> 적 있다. 가족과 함께 계곡길 산책하다 우연히 마주친 사슴 한 마리. 목욕하는 젊은 여성을 봤어도 그렇게 가슴이 뛰었을까. 군살없는 몸. 날씬하고 날렵했다. 잠시 우리쪽 보더니 껑충껑충 뛰어 - , 그 상쾌한 점프! - 상류로 사라졌다. 지금도 우리가족 그 사슴 얘기 하듯, 그 사슴도 우리 얘기 하리라. 다음에 숲에 가면 눈 감고 싶다 . 새벽 내내, 놓치지 않기 위해, 눈 감을 수 없었다. 기도할 때, 키스할 때, 모든 아름다운 만남에서 우리 눈 감듯이 나 다음에 숲에 가선 마음껏 눈 감고 싶다. 부드러운 혀가 내 이마나 손등 핥으면 나 그때 비로서 천천히 눈 뜨리. 사슴인 줄 알았잖아. 내 말에 그녀가 미소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