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위의 글은 제가 어제 페이스북에서 읽은 것이어요. 원문은 영어로 되어 있었는데 제가 우리 말로 번역을 했어요. 글쓴이는 'Otunba Malay'라는 이름의 사람이었는데, 제가 글을 읽는 순간 무려 37,616명이 그 글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저는 처음 이 인상적인 글을 읽고 제가 ‘감동’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니, 몹시 불편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게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스스로 한번 써 보기로 했어요. 아래 그 스토리가 있어요.
1.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일등석으로 가지 않으시겠어요?” 승무원은 의아한 듯 물었다. 박수를 치던 다른 승객들도 다들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예. 이 자리에 앉겠습니다.”
2.
비행기 안은 조용했다. 다들 기내 영화를 보고, 아이패드로 게임을 했다. 앞좌석에선 아이 하나가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30분 전 비행기가 출발할 때 일어났던 그 사건은 이제 점점 승객들 뇌리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굳은 표정으로 앞좌석만 바라보던 백인 남자가 입을 연 건 그 때였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전히 앞좌석을 바라보며. “혹시 왜 자리를 옮기지 않았나 물어봐도 될까요?” 고열에라도 시달리고 있는 듯 남자의 목소리는 몹시 떨리고 있었다.
3.
시카고 공항에 도착해서 캔자스행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렸다. 6개월만에 보는 아들은 또 얼마나 컸을까. 책을 좋아하는 아들은 지난 여름 한국에 왔다 돌아갈 때도 교보에서 5권짜리 『레미제라블』 세트를 사 갔었다.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는 세 시간이 남았다. 사실 모든 사건을 바로 옆자리에서 목격했던 내게는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었다. 노인에게 자리를 옮기지 않은 이유를 묻던 백인 사내의 떨리던 목소리, 분명 어디선가 한 번 들어봤던 목소리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어디서 들었을까? 언제나처럼 공항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하다. 그건 그렇고, 아들은 사갔던 책을 다 읽었을까. 드디어 캔자스행 비행기의 탑승 개시를 알리는 불이 들어왔다. 탑승을 알리는 안내 방송 소리가 들린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짐 가방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기내에서 들었던 백인 남성의 떨리던 목소리를 어디서 처음 들었는지 깨닫게 된 것은. 그 목소리의 남자를 처음 만난 건 『레미제라블』에서 였다.
4.
"나는 당신에게 촛대도 주었는데 왜 당신에게 준 그릇이랑 함께 가져가지 않으셨소?" 장발장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인간의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 거룩한 주교를 바라보았다. 장발장은 금방 실신할 것 같았다. "나를 정말 풀어주는 겁니까?" 장발장은 온몸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레미제라블』 제1권 중에서)
5.
그 기내에서 정의는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나는 불안하다. 이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스토리의 전부라면. 모욕한 자를 떠나지 않는 사람의 스토리가 정녕 없다면. 내가 나의 잘못을 깨우치는 유일한 방법이 모든 사람의 비웃음 속에 좌석에 홀로 앉아 가는 것이라면. ‘인종차별’을 심판하는 이야기만 있고 ‘인종차별주의자’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없다면 나는 불안하고, 감동받지 못한다. 주 예수님. 당신은 왜 자리를 옮기지 않으셨는지요, 저를 떠나.
2012.1.31.
신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