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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4일

두 개의 운동, 두 개의 노래


1. 지금 <봄여름가을겨울>7집 앨범 < Bravo, My Life! > 를 듣고 있다. 10개월 전에 읽었던 앨범 발매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꽤 긴 기사였는데 중간에 < 이번에는 블러링(blurring)효과를 많이 썼습니다 > 라는 말이 나왔다. 재미있다. 음과 음 사이를 < 뭉개며 > , < 모호하게 > 한다는 블러링 기법을 많이 썼다는 얘기가 아직도 < 선명하게 > 내 기억에 남아있다. 나이를 먹다 보니까 샤프한 음 처리보다는 블러링된 음에 더 끌리네요. 그때 한 멤버가 이런 식으로 말했다.

2. 딴지일보(www.ddanzi.com) 에서는 요즘 원고인단 21명을 모집하고 있다. 원고(原告)라는 말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을 의미하니까, 함께 재판을 걸 사람 < 스물 한 명 > 을 모집하고 있는 것이다. 왜 스물 한명? 그래야 재판에 이겼을 때 위자료가 2천만원이 넘기 때문이다. (1인당 백만원×21=21백만원). 여기서 위자료 액수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하면, 소송 청구금액이 2천만원을 넘지 못하면 '소액심판'이 되어서 '판결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딴지일보는 이렇게, < 에로스아시아 >, < 트위스트킴 > 같은 성인싸이트(혹은 불법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필터링을 한 ISP업체 KT(매가패스)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 위해 21명의 원고(原告)를 찾고 있다. 얼마 전까지 잘 접속되던 싸이트를 KT'불법적'으로 필터링을 해서 소비자들이 성인물을 보던 권리를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3. 딴지일보를 방문했던 그날 우연히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를 클릭했다.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기윤실·IVF, 힘 모아서 '음란신문 추방' 전국 캠퍼스 순회하며 스포츠지 포장판매 서명운동 전개”. 인터넷 서핑을 멈추고 서명운동에 대한 기사를 찬찬히 읽었다. “기윤실이 스포츠신문항의운동을 펼친 지 올해로 13년째이다. 기윤실의 역사가 올해로 15년인데, 이는 기윤실이 펼쳐온 운동 가운데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시민단체가 펼쳐온 단일운동으로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터뷰를 읽는데 마음이 무거워졌다. 모름지기 시민· 문화운동이라면 < 시민들의 정서와 문화의 흐름 > 을 정확하게 읽어내며 그때 그때 절실한 < 운동의 화두 > 를 잡아내야 할찐대, 13년째 '안티스포츠신문' 운동을 펼치는 것은 - 200210월 오늘(까지)도! - 적절한 것일까.
4. 노래를 듣는 내내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게 가능할까, 생각했다. 실제 삶에서는 선음(善音)에서 악음(惡音)으로 이어짐이, 그 경계가, 칼로 자른 것처럼 명확한 게 아니라 겹치고,뭉개지며 블러링되는 것 같다는 생각. '성인싸이트'를 보던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서 재판을 걸겠다는 딴지일보 주장과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스포지를 포장하겠다는 기윤실의 주장. < 기독교(적 지혜의 자리) > 는 어디에 자리할까.
5. 난 두 단체가 공개적으로 부르고 있는 노래의 장르를 < 음란 > vs < ()음란 > 으로() 나누는 것에 반대한다. <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참가해야지) > vs < 비기독교인(이니까 그런 모집에 관심을 갖지!) > 의 차원으로() 비교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눈여겨 봐야 할 점은 , 일군의 무리가 '난 즐거움을 찾겠어'운동을 시작하는 이때 다른 한쪽에선 < 여전히 > '죄악이 퍼지는 것을 막겠어'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단체가 < 성적인 즐거움 > 을 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이때, 다른 한쪽에선, < 성적인 타락 > 을 법적으로 막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자의 노력이 잘못인가? 물론 아니다. 문제는, < 한국사회 > < 한국교회 > 로부터 성적인 < 즐거움(에 대한 태도) > 에 대해서 배우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6. 한 사람 혹은 한 사회의 성적 교양과 지식이 '안티 음란'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모습은 기괴하다. '안티음란' 또한 중요한 것이되, 안티음란만으로 우리 사회가 성적으로 < 건강 > 해질 수 없다. 한국교회가 한국사회에 줄 수 있는 성적 메시지는 < 음란하지 말라, 혼전 순결을 지켜라, 스포츠지를 포장하라 > 이 셋밖에 없는 것일까. 성적 존재로 칠십 평생을 살아가야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정도의 피상적인 가이드라인만 알려준다는 것은, 직무유기란 생각이 든다. 성적 욕구가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 라고 공개적인 천명을 하는 딴지일보를 제대로 넘어선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200210.

후기. 10년 전 개인 블로그 < 거짓말을 배우는 곳 > 에 올렸던 글이어요. 조금 수정. 참고로, 전 지금도 IVF를 후원하고 있으며, 기윤실의 몇몇 분들과 페이스북 친구 사이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