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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3일

기독교적(的)?기독교적(敵)! (1) - 이(李)전도사의 신학

1.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용서하고 그 살인자를 자신의 양자로 삼는다. 손양원 목사(1902~1950)가 실제 삶으로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손양원 목사는 두 아들의 장례식에서 하나님께 자신이 감사하는 이유 9가지를 말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만 살펴볼까요.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손양원 목사는 이날 총 9가지 감사의 이유를 말하고 1만환(당시 화폐단위)을 봉투에 넣어 감사헌금을 합니다. 그 봉투에는 “감사의 봉헌금”이란 글귀가 씌어 있습니다.

2. 손양원 목사의 맏딸 손동희 권사가 쓴 『나의 아버지 손양원』를 보면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이 죽을 때 손양원 목사가 있던 애양원교회는 부흥회 기간 중이었습니다. 부흥회의 특별 강사는 손목사의 평양신학 동창생인 이(李)모 전도사였습니다. 애양원교회 교인들이 순천으로 가서 가매장된 상태에 있던 두 형제의 시신을 운반해옵니다.

3.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 정신을 못차리고 비통해 하실 때도 이전도사님은 아버지의 어깨를 세게 탁 치며 호통을 치셨다.” 『나의 아버지 손양원』을 보면 이전도사는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손목사. 정신차리시오. (...) 오늘 젊고 아름다운 두 아들을 순교의 제물로 바친 것이 그리도 아깝소? 슬퍼하기만 할 일이 아니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오히려 기뻐할 일이지요.” 그 후의 일을 손동희 권사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말을 들으시고 난 아버지는 세계가 바뀌었다. 마음 속에 한 줄기 밝은 빛이 비치는 것을 느꼈다고 하셨다. (...)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이 나간 평범한 아버지가 아니었다.” (『나의 아버지 손양원』, p.238 )

4. 누군가 제게 가장 분노가 치미는 한국교회사의 한 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서슴지 않고 이(李) 모 전도사가 비통한 마음에 빠져있는 ‘아버지’ 손양원 목사의 어깨를 내리치는 순간을 꼽겠습니다. 한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를, 시간을, 기회를 빼앗아가는 이 행동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신앙의 이름으로 이전도사는, 분명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겠지요, 가장 비기독교적인, 비인간적인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5. 성경에서 우리가 만나는 그리스도는 슬퍼하거나, 괴로워하거나,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선 눈물을 흘립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선 공포와 번민에 쌓여 가까운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막 14:34, 공동번역). “내가 슬퍼 죽을 것 같아”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CEV). 그렇습니다. C.S.루이스의 말대로 운다는 것은 “영국 신사다운 행동은 아니지만 매우 그리스도적인 행동”입니다. 괴롭고 슬퍼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도 죄책감 가질 필요 없으며, 그런 마음을 옆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그 모든 게 다 그리스도께서 “괜찮다”라고, “나도 그래”라고 삶으로 보여주신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한 명의 한국인 전도사가 무덤 앞에서, 동산 바위 옆에서 외롭고 무서워 울고, 고민하고, 몸부림치고 있는 그리스도의 어깨를 후려칩니다.

6. 고려오페라단이 예술의 전당에서 박재훈 박사가 작곡한 오페라 (2012.3.8.~3.11)을 공연하고 있습니다. 출연진을 살펴보니까 ‘이전도사’도 등장합니다. 이 오페라에도  < 그 장면 > 이 나오겠지요? 그 장면을 < 아름답고 >  < 신앙적으로 > 묘사했으면 어떻하지요. 그 장면은 가장 비기독교적인 장면인데 말입니다. 슬퍼서 울고, 무서워서 떠는, 먹는 걸 탐하고 수다스러운 성자(聖者)에게도 우리가 <곁>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신학이 그리스도가 금하지 않은 슬픔과 쾌락을 믿음으로 수용했으면 좋겠습니다.
201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