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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2일

택배 기사

(*19금적 표현이 등장합니다)

1. 안개로 유명한 무진(霧津)의 한 대형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일하던 중 학위 논문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K(남·52세)가 취한 행동은 이러했다. 제일 먼저 K는 자신이 담임목사로 초빙될 당시 마지막까지 함께 후보로 올랐던 지원자 세 명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다. "목사님께 가야할 기회를 제가 가로챘습니다." 십 년도 더 된 일에 대해 사과를 받은 세 사람은 처음에는 당황해했으나 헤어질 땐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K는 자신이 무단으로 논문을 인용한 국내 저자 두 명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그 중 한 명은 교수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고 K는 그의 연구실 앞에 서서 삼십 분 넘게 기다려야 했다. K는 자신이 이십 여쪽 넘게 표절한 외국 논문의 원저자 켄 블레이크에게는 장문의 사과 이메일을 보냈다. 이렇게 여섯 사람에게 용서를 구한 후 K는 자신을 후임으로 추천해준 원로 목사 Y가 묻혀있는 강원도 홍천을 찾았다. 우리는 그가 사부(師父)의 묘소 앞에 한 식경 넘게 아무 말없이 서 있었다는 것만 알지 그가 무슨 생각 혹 무슨 기도를 했는지는 모른다. 산을 내려온 K는 아직도 아랫 마을에서 홀로 살고 있는 원로 목사의 아내를 찾아가서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제 여든이 넘은 사모는 “아직 식사 전이지?” 라고만 묻고는 그를 마루 위로 이끌었다. K는 묵묵히 사모가 해준 밥을 먹었다. 밥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물을 많이 마셨다. 외투를 챙겨입고 원로 목사의 집을 떠나며 K가 – 사모의 얼굴을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 말한 것은 이것이 다였다. “당회에 비전센터 건립 원점부터 다시 재고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노(老)사모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미소는 아주 오래전 주일학교 시절 K를 가르치던 젊은 사모의 얼굴에 떠오르던 그 미소였다. K는 선생들을 미소짓게 하던 아이였다. 이 모든 게 K가 교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2. 노(老)사모를 만나고 무진으로 내려온 날은 토요일이었다. 저녁이 지나 밤이 깊어질수록 K의 얼굴에는 수심이 깊어졌다. 요 며칠 K의 얼굴에는 지난 몇년간 볼 수 없었던 평화가 넘쳤으나 이제 그의 얼굴엔 두려움과 초조 뿐이었다. 그는 기도를 시작했다. 밤 열시가 넘자 그의 기도는 헐떡거림으로 변했다. 가끔 이런 말이 그의 입에서 새나왔다. “제가 꼭...”, “주님, 그렇지만 그건...” K가 침실에서 땀을 흘리며 기도하는 동안 그의 아내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설거지를 하며 그녀는 남편이 저녁 먹으며 한 말을 곱씹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십 분 넘게 같은 접시를 닦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녀의 눈가는 젖었으나 입가엔 미소가 피어올랐다.

3. 주일예배가 시작됐는데도 K는 여전히 교회 정문 앞에 서 있었다. 눈을 감지는 않았으나 그의 시선은 정면이 아니라 서너 걸음 앞 땅을 향하고 있었다. 아침 7시반부터 오후 1시까지, 네 차례의 예배가 끝나는 동안 그는 두 손을 모은 채 자기가 담임하던 교회 정문에 서있었다. 장로들과 행정목사들과 찬양대원들과 청년부원들이 교회에 들어서며 말없이 시선을 아래로 두고 서있는 K를 발견했다. 그때마다 그들의 시선 또한 K의 시선 마냥 땅으로 향했고 빠른 걸음으로 교회 앞 마당을 가로질러 교회 본당 안으로 들어갔다. 전임 담임목사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함. 그건 K에 대한 교인들의 말없는 예우였다. 그러나 나이 많은 권사들 중 일부는 K의 팔을 잡고 "목사님, 왜 여기서 이러세요. 어서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만은 K도 질끈 눈을 감았다. 한편 그날 교회 정문을 통과한 2만여 명의 교인들은 신비롭다 할 수 밖에 없는 경험을 했다. 땅만 쳐다보며 서있던 K와, 종종 걸음으로 정문을 지나쳤던 교인들의 시선이 마주쳤을 리 없건만 이상하게 많은 이들은 그 사건이 있은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구동성 K와 눈길이 마주쳤다고 말하고 있다. “저를 바라보면서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것 같았어요. 제 가슴이 뭉클해졌었지요.” 심지어 어떤 이는 K가 교회 정문을 들어서는 교인들과 일일이 뜨거운 악수를 나눴다고 기억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만 그날 K와 교인들 사이에 모종의 깊은 교감이 있었다는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날 있었던 네 번의 예배 또한 특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배의 분위기는 물론 무거웠다. 그러나 침울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 될 것이다. 공기는 무거웠지만 가라앉지 않고 소용돌이 쳤다. 뜨거운 열기가 교인들이 앉은 좌석 사이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녔고 이윽고 사람들의 가슴속까지 헤집기 시작했다. 감사하는 성도가 되자. 흔하디 흔한 설교 주제였고 갑작스레 설교단에 선 젊은 부목사는 긴장해서 땀까지 흘렸다. 하나 설교를 듣는 이들 모두 이상하게 그리스도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은 교회 정문 앞에 서 있는 K의 존재도 잊은 채 하나님이 젊은 부목사를 통해 자신들에게 하는 말씀에 귀기울였다. 같은 일이 다음 주에도 반복됐고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교인 중 한 사람이 K에 대한 추억 하나를 떠올렸다가 바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최근 보름 동안 K를 떠올린 게 그때가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두 달이 지났다. 교회는 추수감사절 부서별 찬양대회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교회에는 완벽한 일상이 찾아왔다. 

4. K가 사임하고 석 달이 지났을 때 몇몇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는 일이 발생했다. K는 종종 아내와 시내 파스타 전문점을 찾아 스파게티를 먹었는데 그가 ‘너무 맛있게’ 먹는 게 구설에 올랐다. “좋은 일로 사임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사임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입에 크림 묻는 줄도 모르고...” 신앙이 뜨거운 이들은 K의 행동이 못마땅했다. 그들은 침울하지 않은 K의 얼굴과 크림 묻은 K의 입술과 가끔 아내 앞에서 터트리는 K의 웃음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기독교계의 원로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말없이 차를 마시던 원로가 K에게 물었다. “이봐 K목사, <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가서 장애인을 돌보거나 빈곤 퇴치 운동 > 같은 걸 하고 오면 어떻겠나?” 찻잔에 시선을 둔 K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2,3년 봉사 하고 오면 내 K목사 복권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봄세. 스파게티나 먹으며 한가하게 시간 보내고 있다는 말이 내 귀에까지 들려. ” 그 말을 들은 K는 조심스럽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행동은 조심스러웠지만 목소리는 차라리 쾌활했다. “목사님, 사실 제가 사임하고 제일 먼저 떠올린 단어가 아프리카였어요.” “아, 그런가?” 원로는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곳에서 지금도 말없이 섬기고 있는 분들 생각이 나더라구요. 아프리카가 내 개인적인 재기를 위한 장소인가, 거기는 죄 지은 사람이 가는 게 아니라 사랑이 많은 사람이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찻잔을 집는 원로의 손이 조금 떨렸다. “제가 자꾸 무의식 중에 고행이라는 쉬운 길을 택하려는 거 같아서, 그럴 때마다 오히려 영화도 더 보고, 예, 제가 좋아하는 음식도 먹고 일부러 쾌활하게 지내려고 했는데 그게 오해를 산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덕이 되지는 않지” “예, 그래서 일을 해보려고요." "일? 그래, 자네가 좋아하는 스파게티집이라도 해보겠다 이건가?" K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원로는 자신의 말이 과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평생 설교만 하던 자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 말이지” "택배를 해보려고요" 고개를 든 K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월요일부터 출근해요, 목사님. ” 

5. 택배를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났고 K가 오늘 배달한 수화물은 78개였다. 오늘 하루 2건의 클레임이 들어왔고 주차딱지 1장을 뗐다. “이봐 K씨, 지금이라도 다른 거 알아봐. 당신에겐 안 맞아.” 하루 평균 150개 이상을 배달하는 고참이 K에게 충고했다. “일단 전화를 받지마. 전화는 다 자기 일정에 맞춰달라는 거야. 안그래? 요청 받고 못 맞춰주면 클레임이야. 맞추다 보면 당신 스케쥴 꼬이는 거고.” 모든 전화는 비서가 받았었다. “바쁘시다고 전할까요?” 인터폰을 통해 들리던 젊은 비서의 목소리는 가끔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아니, 영주씨. 연결해줘. 그리고 오후에 우리 비서진 전부 차 한잔 같이 할까” 기뻐하는 젊은 비서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통화 대기자와 연결됐다. 무진 지역의 모든 사람이 그와 단 몇 분만이라도 연결되기를 바랐다. 이제 사람들은 K보다 먼저 전화를 끊는다. 3개월 동안 배운 건 아쉬운 소리하는 법이었다. 경비원들의 불친절한 말을 들어 넘기고 경비실에 짐 맡기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K는 새로운 세상을 배웠다. 이상하게 K는 헬라어와 제자양육법을 배울 때만큼 보람을 느꼈다. 그는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으로 점심을 때웠고 종종 김밥과 함께 파스를 샀다. 매일 밤 10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K는 짧은 글 하나 씩을 트위터에 올렸다. 하루 종일 혼자 일하다보니 대화가 그리웠다. 누군가 답을 해주지 않더라도 맘에 있던 말을 적으면 긴장이 조금 풀리는 거 같았다. 

6. 어느날 택배를 든 K의 손이 몹시 떨렸다. 택배 수신처와 수신자 이름을 확인한 그의 심장은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시간이 지나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가 데리고 있던 부목사였다. 그는 택배를 땅에 내려놓고 도망가고 싶었다. 그는 아프리카로 가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무실은 6개월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다들 자기 자리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그는 택배 수신자 무진제일교회 청년2부 김형주 목사의 자리를 알았지만 이젠 남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길을 잃은 사람마냥 복사기 옆에 서있었다. “어느 분 찾아...” 문에서 제일 가까운 사무간사 지혜가 무심코 ‘현대퀵’이라고 쓰인 노란 조끼 입은 K를 향해 묻다가, 놀라, 미처 말을 맺지 못했다. 사무실 안을 메우고 있던 부드럽고 평화로운 소음이 빠르게 사그라져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기의 변화를 눈치챘고, 출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한 명씩 한 명씩 돌처럼 굳어졌다.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딱딱해진 정적이 마침내 한 사내 앞까지 와닿았고 뒤늦게 낯선 침묵을 감지한 펑퍼짐한 얼굴의 그 사내는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들었다. 카라멜 마끼아또를 좋아했다. 설교는 못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잘했고 족구할 때 리시브는 약했다. 그 사이에 얼굴엔 살이 더 붙은 듯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내는 무언가 발음하려 했으나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사내는 고개를 숙이며 K가 건네는 택배를 두 손으로 받았다. 택배를 건네 준 K는 출입구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나와서는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어디선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안에서 나는 소리일까? 아니다. 웃음소리는 K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 그에게 몰려왔고 K의 입가에는 웃음이, 눈가에는 이슬이. 그날 열 시 K는 “오늘 가장 무거운 택배를 배달했습니다. 무겁지만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주님, 힘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가 트윗에 기독교적 용어를 쓴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7. 내가 트위터에서 ‘늦게 도착한 택배기사’라는 아이디를 발견한 건 한 달 전이었다. 택배 기사에 대한 자료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난 지금 택배뿐만 아니라 중국집 배달 , 우편 배달 , 신문 배달 등 갖가지 배달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다 만나고 있는 중이다. 화장 짙게 한 여성들 잔뜩 태운 봉고차 조수석에 앉아보기도 했다. 선인세를 받고 쓰고 있는 시집때문이었다. '욕망의 배달, 배달의 욕망'이란 주제로 연작시를 쓰고 있다. 이상하게 그의 트윗은 항상 밤 열시 경에만 올라왔다. 올라오는 트윗들에 깊이가 있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모든 택배가 투명하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오늘 택배에 보아뱀이 들어 있었을까요?"라는 식의 소녀취향적 글이거나 아니면 그날 배달한 택배 개수 등을 기록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성경을 인용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 그의 감상은 평범하다 못해 무의미할 정도였다. 세례자 요한이 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는 말을 써놓고는 이어서 "이제 저의 목표는 쇠하는 것입니다"라고 쓰는 식이었다. 해석이라기 보다는 동어반복이었다. 난 대번에 그가 처음으로 성경을 읽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그의 동어반복에는 내게 없는 게 하나 있었고 난 그게 못견디게 부러웠다. 그는 흥분했다. 그는 매 구절에서 가볍게 흥분했다. 내가 성경을 읽으며 다시 흥분할 수만 있다면! 그는 성경을 읽으며 마치 첫날밤 신부의 옷을 하나 하나 벗기는 신랑 마냥 흥분했고, 상기됐고, 감격했고, 고마워했다. 그에게는 매번 상대를 절정에 다다르게 할 기술은 없을지 몰라도 그는 흥분에 떨며 키스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초신자의 깊이 없는 시각이 못견디게 부러웠고 그래서 그의 트위터 계정의 팔로잉 단추를 눌렀다. 

8. "족발과 여자가 한 시간 간격을 두고 / 같은 장소로 배달된다 / 여기는 307호 // 애비와 아들이 / 19년 간격을 두고 / 똑같이 여자를 시켰다 / 어쩌면 / 같은 모텔에서". 지난 주 나는 드디어 연작시의 마지막 편을 완성하고 원고를 출판사로 넘겼다. 하나, 난 지금도 여전히 '늦게 도착한 택배기사'를 팔로잉하고 있다. 글 쓰는 친구들이나 평론가들 트윗은 빼먹어도 택배기사의 트윗만큼은 챙겨 본다. 매일 그가 트위터에 올리는 구체적인 숫자들은 - 이를테면, 그가 하루 배달하는 택배 갯수나 그가 편의점에서 산 파스 숫자, 엘리베이터 없는 연립주택에 밀가루 부대 메고 걸어 올라갈 때 센 계단 숫자 등 -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었다. 언젠가 4일 동안 그의 트윗이 한 건도 올라오지 않은 때가 있었는데 난 괜히 신경이 쓰여서 도무지 집중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그 나흘간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했다. 닷새째 되던 날 밤 - 역시 열시경이었다 - 그가 올린 트윗을 발견하고 난 반가움의 탄성을 질렀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늦게 도착한 택배기사'의 전직(前職)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봤다. 처음에는 목사를 생각했으나 평소 성경에 대한 그의 감상이나 평을 떠올리고 그 생각은 접었다. 아마 유명한 학원강사였지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날 그는 처음으로 트윗롱거(TwitLonger)를 이용해서 글을 올렸다. 그가 140자 이상의 글을 올린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동영상 하나를 봤어요. 제 온 몸은 경직됐습니다. 40분 내내 제 얼굴만 나오는 영상이었습니다. 제 성기가 노출된 영상이었어도 이렇게까지 부끄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배달 일도 접고 스마트폰도 끈 채 삼 일을 방 안에만 있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나흘 째 되던 날 불현듯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무엇이 최악일까. 최악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제 속에 작은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최악은 지나갔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최악은, 지금도 새로운 동영상을 녹화하는 일일 것입니다. 지금도 그 영상들이 업데이트 되는 것. 그것이 최악입니다. 저의 거짓이 더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남자답게 방을 나오기로 했습니다. 아, 그리고 기뻐해주세요. 오늘 저 백두 개를 배달했습니다. 네, 오늘은 제가 처음으로 하루 백 개를 넘긴 날입니다. " 

9. K가 택배를 시작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난 K가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입을 약간 벌린 채 곤히 자고 있다. 조용히 방을 나온 K는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한다. 고참은 며칠전부터 명절에 비하면 평소 배달은 장난이라고 겁을 잔뜩 줬다. 문득 명절이면 목양실과 사택에 잔뜩 쌓였던 선물 택배들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그때는 그 많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배달됐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들어오는 물건이 너무 많아 이름 확인하는 것만 해도 벅찼다. 일년에 서너차례는 받는 뻔한 선물들이라 식상했지만 나중에 비서가 정리해준 발송자 리스트에서 잘 아는 장로나 집사 이름이 보이지 않으면 내심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과일이나 식용품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부목사들이나 각 부서장들에게 넘겼다. 세수를 하던 K가 갑자기 무엇엔가 놀란 표정이다. K는 신기하다는 듯이 거울 가까이 얼굴을 갖다대기도 하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보기도 했다. K는 한동안 말없이 거울 속 사내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데도 자신이 미소 짓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웃는 얼굴을 본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는지 K는 기억나지 않았다. 거울 속 사내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사내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 "바꾸지 않을래요" K가 누군가에게 속삭였다. "지금이 더 맘에 들어요. " 

10. "택배 왔었어요?" 여자가 들어오면서 묻는다. "복도에서 보니까 선생님 댁에서 택배 기사가 나오던데요?" 매주 수업 시간에 듣는 목소리이지만 내 집 거실에서 들을 땐 색다른 맛이 난다. 이제 여자는 내 집 현관문 비번을 알고, 내가 하루에 쓰는 원고 매수를 알고, 아내가 지방에 내려가 있는 요일을 안다. 여자가 외투를 벗어 소파 위에 놓고는 스스럼없이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꺼내 마신다. 난 얇은 윈피스 위로 그대로 드러나는 20대 여자의 몸매를 힐끔거린다. "명절이고 해서 집에 있던 포도주 한 병 편집장한테 보냈어. 이번에 선인세를 꽤 높게 책정해 줬거든".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자가 내 서재로 쏙 들어간다. "뭘 먹을 래?" 라고 소리 높여 묻자 "선생님, 치맥 어때요?"라는 목소리만 서재에서 들려온다. 난 핸드폰을 들고 배달 스티커가 붙어 있는 냉장고 앞으로 갔다. 목요일 시(詩)반 수강생 중에서 제일 뛰어났다. 스물아홉 국어교사였다. 내가 그녀의 싱싱한 육체에 빠져있다면 그녀는 내 오래 된 책으로 가득찬 서재에 빠져있다. "이건 대학 신입생 때 사신 거네요. 오늘의 책이란 서점이 신촌에 있었어요?" 여자는 서재의 모든 책을 한 권 한 권 뽑아 내가 남긴 메모를 읽었다. 여자는 서재에서 하는 걸 좋아했다. "여기서 하면 여기 있는 책들의 모든 문장들이 한꺼번에 제 몸을 간지르는 거 같아요." 언젠가 여자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주문을 하고 서재로 들어갔을 때 여자는 책장 앞에 선 채로 책을 읽고 있다. 뒤에서 안았다. 이미 하드커버보다 더 단단해진 내 성기를 20대 젊은 여자의 탄탄한 엉덩이가 밀어냈다. 양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두 검지로 젖꼭지를 건드리자 여자는 책을 쥔 채 몸을 떨며 신음했다. 처음 몇 번은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선생님, 온 거 같아요" 이제 내 귀에도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여자가 웃으며 재빨리 내 입술에 묻은 루즈를 닦아줬다. 현관에서 치킨과 맥주를 받았다. 맥주를 마신 여자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쪽쪽 빨아 먹는 입술이 붉다. 한데, 이상한 일이다. 한 주 내내 기다려온 질펀한 정사를 앞두고 있건만 더 이상 흥이 나지 않는다. 표정 때문이었다. 분명 누군가의 시선에서 경멸을 읽었다. 누구였지? 그래, 그 배달원 자식. 분명 경멸의 시선이었어. 눈치를 챈 걸까? 나는 분명 서재 문을 닫고 현관문을 땄다. 내 방에 여자가 있다는 건 아무도 알 수 없다. "선생님, 왜 안 드세요?" 아뿔사!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 재수 없는 놈이 확실히 떠났던가? 아니, 마음이 급했던 나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듣기도 전에 이미 돌아섰었다! "쉬, 가만 있어 봐" 난 소리를 죽이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소리를 죽이며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내 손엔 골프채가 들려있다. 천천히 현관 중문을 밀었다. 한 걸음 안으로 내디뎠다. 조금은 어두운 현관 한 쪽 구석에서, 여전히 경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내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쳤으나 사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어둑한 현관에 서서, 신발장 전신 거울 속 사내의 시선을 받아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난 행복하니까 그런 눈으로 날 볼 필요 없어! 알았어? 지금 아주 행복하다고!" 감히 내가 하고 있는 사랑을 그런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다니. 마흔 후반에 찾아온 이 소중한 사랑을 말이다. “난 내가 하는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어. 이 사랑에 모든 걸 걸었단 말이야. 뭘 안다고 그런 눈으로 날 쳐다봐”. 난 천천히 골프채를 쳐들었다. 골프채를 꽉 쥔 내 양 손과 거울 속 사내의 시선이 동시에 조금 흔들렸다.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그 순간 거실을 가로질러 들려온 여자의 목소리. 신비로운 일이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는 한순간에 내 안의 모든 분노와 불안을 쫓아주었다. "아니야, 금방 가!" 내 입에선 다시 생기 가득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강한 욕정,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내리덮을 만한 강렬한 욕정에 휩싸였다. 허겁지겁 돌아서며 급히 현관 중문을 닫다가 한 번 더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난 아직도 혼란스럽다. 내가 본 게 맞다면 그건 경멸이 아니라 애원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2013. 4.21.

신동주


서플먼트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가상의 공간 무진(霧津)에서 벌어진 허구이듯이, 무진의 한 목사와 서울의 한 시인이 등장하는 이 글 역시 전적으로 허구입니다. 제 글 중에서 꺽쇠 < > 로 표시한 부분은 손봉호 교수가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 죽었으면 살았을 걸 > (2013.3.28.)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지만, 제 글에 등장하는 ‘원로’는 손봉호 교수와는 무관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진실한 회개 이후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할 수 있으며 저는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 제가 상상하는 한 가지 가능성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1차적으로 저를 위해서 구상해봤습니다. ‘택배’는 제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작위적으로 선택한 소재이나 글을 쓰다보니 ‘거울’은 회개와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글을 쓸 때부터 마칠 때까지, 제가 마음 속으로 계속 했던 질문은 “이웃 앞에서 죄를 인정하면 과연 죽는 것일까?” 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