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3년 4월 3일

핸드폰

1. 제 핸드폰에는 카메라나 MP3 플레이어 기능은 없지만 다른 핸드폰에는 별로 없는 기능이
하나 있습니다. < D-Day 플러스 > 기능이라는 것인데, 무엇인가 기록을 해 두면 나중에 정확하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려주는 기능입니다. 긴 문장은 쓰지 못하고 열자 내외의 글자만을 쓸 수
있는 메모장입니다. 제가 2005년 10월 13일에 < 60.1 kg이 되다 > 라고 쓴 메모 옆에는
"482일 00시간 35분 지났습니다"라는 문구가 뜹니다. 요즘은 열심히 먹고 운동도 하고 해서
62kg까지는 올라 갔습니다. 65kg이 저의 목표입니다.
2.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구는 지금으로부터 460일 23시간 55분 전에 듣고 써 두었던 말입니다.
평범한 아침이었습니다.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니까 바로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보였습니다.
아내도 곧 눈을 떴습니다. 아내와 저는 15cm 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세수도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저를 바라보던 아내가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말을 하기 전에 잠시 말없이 저의 얼굴을 만졌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흙속의 진주야".
( 죄송합니다 ;; 어쨌든 이야기는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 ) 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잠시 있다가 빵을 먹고 출근을 했습니다. 2005년 11월3일 아침이었습니다.
3. 가끔 피곤할 때면 핸드폰을 열고 < D-Day 플러스 > 6번에 기록되어있는 '흙속의 진주'라는
'다섯 글자'를 봅니다. 그러면서 가끔 얼굴을 만져볼 때도 있습니다. 진흙이 묻나 안묻나. ㅋㅋ
오늘도 회사에서 하루종일 설특집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많이 지쳤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461일 00시간 25분이 지났습니다.
2007.2.7.
* 몇년 전 제가 다니는 교회 장년부모임 주보에 썼던 글입니다. 그 날 교회에 갔더니
많은 “누님들”이 저의 얼굴과 옷을 만지며 “응, 진흙 좀 털어주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