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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3일

4. 당신의 거짓말

1. 토니 레인즈(Tony Rayns)라는 영화 평론가 겸 영화 감독이 있습니다. 이 남자를 소개할 때 ‘아시아’라는 단어를 빼면, 그를 전혀 설명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영국영화연구소(BFI)에서 내는 < 사이트 앤 사운드 > 의 고정 필자로 활약하면서 밴쿠버 국제영화제의 아시아영화 부문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홍콩영화제가 창설되는데 견인차 노릇을 했으며, 대만의 허우샤오시엔,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중국의 5세대 감독들을 처음으로 서양에 알렸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초창기 작품들을 해외 영화제에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했고, 해외에서 개봉되는 수많은 한국과 일본, 홍콩 영화의 영어 자막 번역을 맡았습니다. 한국 영화인들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의 틀을 짰습니다. 이렇게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영화 전문가 레인즈는 2001년 < 장선우 변주곡 (The Jang Sun-Woo Variations) > 이라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연출합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해 1월 로테르담국제영화제(IFFR)에 초청받아 처음으로 상영됐고 같은 해 11월,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입니다. “왜 장선우인가?”라는 한국 관객들의 질문에 토니 레인즈는 “장선우 감독처럼 8,90년대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관통하며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 되는 분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는데요, 아래 글은 바로 그 장선우 감독이 ‘재미있고 흥미롭게 관통’했던 시기에 일어난 몇몇 사건들에 대한 저의 간단한 소묘(素描)입니다.
2. 1996년 10월 5일 작가 장정일, 김영사에서 『내게 거짓말을 해봐』 출간. 보름 뒤 ‘음란폭력성 조장매체 대책시민협의회’(음대협, 공동대표 손봉호), 김영사에 모든 ‘음란도서’를 회수, 폐기하고 일간지에 대국민 사과문을 올릴 것을 요구하는 공문 발송. 불응 시 전국민을 대상으로 김영사의 모든 도서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고 고지. 김영사, 판매된 서적의 전량 및 인쇄소에 보관한 본문과 표지 필름까지 수거, 폐기하겠다고 약속하며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선처를 바라는 진정서 제출. 김영사, 동아일보에 음대협이 요구한 사과문 게재. 검찰, 작가 장정일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 표명. 검찰, 김영사의 김영범 상무 음란물판매죄로 구속. 문인 205명, 작가와 출판인에 대한 사법제재에 반대하는 성명 발표. 검찰, 김영사 김영범 상무에게 음란물판매죄로 벌금 750만원 선고. 12월 31일, 저자 장정일 해외에서 귀국. 검찰, 1997년 1월 6일에 장정일 소환 조사 후 구속영장 청구. 법원, 증거인멸 도주 우려 없다고 판단, 영장 기각. 검찰, 음란문서 제조 및 판매 혐의로 장정일 불구속 기소. 4월 30일 3차 공판에서 징역 1년 6월 구형. 5월 30일, 서울지법 김형진 판사, 『내게 거짓말을 해봐』의 “상당 부분이 변태적 성교 행위 묘사에 치중하고 있”기에 음란성이 인정된다며 장정일에게 징역 10월 선고함과 동시에 “피고인이 전혀 잘못을 뉘우치는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이유 들어 작가 법정 구속. 장정일은 7월 23일 항소심 재판부가 보석결정을 내리기까지 2개월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 1998년 2월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선고. 장정일, 대법원에 상고. 1998년 7월, 장선우 감독과 제작사 ‘신씨네’의 신철 대표, 장정일의 판금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원작으로 삼은 영화 < 거짓말 > 에 대한 촬영 개시. 1999년 7월,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사무국, 장선우 감독의 < 거짓말 > 을 경쟁부문에 초청. 8월, 영상물등급위원회, < 거짓말 > 에 대해 “미성년자와의 변태적 성관계와 가학행위를 여과없이 묘사해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며 등급보류 판정. 국내 개봉 연기. 9월 4일,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서 기자 시사회 포함 총 네 차례에 걸쳐 < 거짓말 > 상영. 10월, 영상물등급위원회 < 거짓말 > 에 대한 재심에서 다시 등급보류 판정. 개봉 재차 연기. 12월, 영상물등급위원회, 문제가 된 내용을 삭제하고 수정 편집을 한 < 거짓말 > 에 대해 18세 이상 관람가 결정. 음대협, 2000년 1월 6일에 장선우 감독과 제작사 ‘신씨네’ 신철 대표, 단성사 등 전국 100여개 극장주를 ‘음화 제조 및 반포에 대한 혐의(형법 243조)’로 서울지검에 고발. 음대협은 고발장에서 “영화 < 거짓말 > 은 가학·피학적인 성도착 및 변태적인 성행위가 전체의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공개적인 상영이 이뤄질 경우 사회의 성도덕 타락과 더불어 성의식 왜곡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기에 비록 영화진흥법상의 등급위원회에서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형법상의 음란물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법원에서 별도로 판단, 적합할 경우 상영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 이라며 영화 상영시에 법원에 추가적으로 상영중지가처분신청과 거짓말 관람 거부운동 등을 전개해 영화상영을 저지할 계획이라고 밝힘. (법률신문, 2000.1.6.) 1월 8일, 영화 < 거짓말 > 개봉. 1월 12일, 영화인회의, 무고한 고발과 상영방해운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음대협에 요구하는 성명서 발표. 1월 15일, 음대협, 극장주들이 배급사와의 계약 문제로 일방적인 영화 종영이 곤란하다고하자 서울지검에 영화 배급사 추가 고발. 3월 9일, (주)새한 , 영화 < 거짓말 > 비디오테이프 출시. 3월 11일, 음대협, 영화 < 거짓말 > 비디오테이프의 출시와 관련해서 판권사인 코리아픽쳐스와 배포사인 (주)새한을 음란물 반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 3월 27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공동대표 손봉호) 등 144개 기독교단체와 시민단체, ‘거짓말 비디오 출시 대책 시민사회연대’(이하, 대책연대) 구성. 대책연대, 비디오로 출시된 < 거짓말 > 의 전량 수거 및 파기를 위해 관련 회사 제품 불매운동에 돌입. 6월 30일 검찰, < 거짓말 > 의 장선우 감독에 대해 무혐의 결정. 국내 언론들, “ 6개월을 끈 < 거짓말 > 을 둘러싼 음란성 유무 논쟁이 일단락” 되었으며 “ < 거짓말 > 은 예술이라는 미명하에 성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포르노 영화'에 불과하다는 음대협측 주장을 일축한 셈”이라고 보도하면서 “영화계는 일단 이번 무혐의 결정을 계기로 한국영화의 제작이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고 전언(중앙일보, 2000.6.30.). 8월 8일, 음대협 서울고검에 항고. 2001년 4월 11일, 서울고검, 음대협의 항고 기각. 같은 날 음대협, “대검에 재항고하거나 헌법소원을 내는 등 끝까지 법적 대응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의사 표명.
3. 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영화가 우리 한국 사회(혹은 한국의 주류 기독교)와 이렇게 <격렬하게> 조우했습니다. 누군가는 남녀가 벗고 벌이는 ‘음란한’ 행위에, 누군가는 음대협이란 단체의 ‘집요한’ 고발에 속이 울렁거렸을 것입니다. 몇가지 소소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글을 맺으려합니다. 음대협에 전화를 건 적이 한 번 있습니다. 음대협은 영화 < 거짓말 > 개봉 첫날 관람객 2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질문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통계는 ‘거짓말’을 잘 하니까요. 토니 레인즈의 < 장선우 변주곡 > 은 ‘Hair’, ‘Eyes’, ‘Bad’ 등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레인즈는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하는데요, 짜장면 배달부, 포장마차 주인, 그리고 심지어 영화 전단지를 붙였던 사람까지 인터뷰합니다. 깜박 잊을 뻔 했네요. 저한테도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2012.6.21.
신동주

서플먼트
1)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전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토니 레인즈는 한국 영화인들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의 골격을 짰”을 뿐만 아니라 “국제영화제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전혀 없었던 (중략) 부산시 공무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부산 관공서를 직접 방문했다. ( < 프리미어 > 2003년 6월호, ‘김동호가 만난 영화제 사람들(4)’ 중에서).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었던 마르코 뮐러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토니 레인즈 영화제’라고 혹평했는데 “토니 레인즈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마르코 뮐러는 그후 3,4년 동안 부산에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손정인 기자, 국제신문의 기획기사 PIFF 10년 속으로(11) ‘피프 도운 외국 어드바이저’에서 인용). 토니 레인즈는 자신의 명함에 ‘토니 레인즈’라는 한글 이름도 인쇄했으며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가 해외에 알려지는 데는 그의 공이 지대” 했는데 “일각에서 한국영화의 해외채널이 지나치게 그에게 의존하지 않느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다.” (중앙일보, 2002.11.26. ‘아시아 영화통 토니 레인즈 ’ 중에서).
2) 위에서 토니 레인즈가 장선우 감독에 대해 한 두 차례의 언급은 각각 제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기간 중에 열렸던 < 장선우展 > , 그리고 제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 장선우 변주곡 > 의 상영 후 이뤄진 관객과의 대화 중에 나왔다. <장선우 변주곡>은 우리나라 최초로 생존 감독을 대상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이다.
3) 당시 진보적 칼럼니스트 김규항은 “그 사람들은 조리퐁을 보면 여자 성기를 떠올리고 테트리스를 보면 삽입성교를 떠올리는 사람들이니까”라고 음대협 사람들의 ‘세계관’을 묘사. (2000.8.2. < 한겨레21 > 의 ‘쾌도난담’ 중에서). 여기서 중요한 점은, 김규항이 음대협 사람들의 그런 사고 구조를 < 인정 >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음란물대책협의회(음대협)에서 영화 < 거짓말 > 을 음란영화로 보고, 그걸 시민들한테 보여주면 따라할 것 같아 걱정하는 건 그 사람들의 권리라고 봐. (중략) 그래서 극장 앞에서 관람거부 캠페인을 하는 건 허용돼야 한다고.” 이렇게 김규항은 음대협이 < 거짓말 > 을 < 음란하다고 생각하고 그렇다고 표현할 자유 > 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김규항은 - 아울러 나는, 그리고 음대협과 대립각을 세운 많은 단체들은 - 무엇을 문제 삼는 것일까? 상대가 스스로 결정할 권리와 기회를 앗아가는 것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그걸 공권력의 힘을 빌려 상영금지를 받아내려는 것은, 의견을 선택할 권리를 없애버린다는 차원에서 파시즘인 거야 (김규항)”.
4) “작품이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는다고 했는데 문학은 언제나 일반적 통념을 깨며 우리가 믿고 있는 가치가 유효한지를 물어왔다. 이 때문에 사회에 공헌해왔다. 또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다면 청소년에게 읽지 마라, 아직 읽을 나이가 안됐다고 말해야지 성인의 읽을 권리까지 빼앗아서는 안된다. 문화를 어린이들의 기준에 맞추는 것은 어른에게 아동복을 입히는 것과 같다. 나는 청소년 하이틴 작가가 아니다.” (장정일, 문화일보 1996.11.21.)프랑스에 체류 중이던 장정일은 “고향 신문”에 기고하기 위해 < 나는 하이틴 작가가 아니다 > 를 썼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3 』 중 1996.11.15. 참조 ) 기고 원문을 읽어보면 상기 인용 부분과는 문장 구성 등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상하게 내게는 길이를 줄인 신문의 인용 부분이 더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와 , 상기 문화일보 기사를 재인용했다. (현택수의 < 예술 검열의 모순과 정치사회적 기능 > 에서 재인용). 상기 인터뷰가 기사가 실리고 6개월 뒤, 장정일, 우리나라 예술가 중 최초로 ‘음란죄’ 죄목으로 감옥에 수감됨.
5) 장정일의 ‘거짓말’과 장선우의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을 하나 소개하면 이렇다. “그 당시 그 영화가 몰고 온 사회적인 파장의 핵심은 결국 음란물의 기준과 영화계 전체의 구도를 잡는 일에 영화계가 홀로 독단적인 기준을 제시하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 거짓말 > 은 그런 역할을 하는 영화였고, 또 영화 감독이 그것을 의도한 면도 있었구요. 그런 것들에 대한 적어도 사회의 대화자로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신국원 음대협 정책위원장 , 2004년 기독교집회 ‘코스타 KOSTA ’ 에서 행한 ‘기독교와 지성’ 강의 중에서. 처음 두 문장은 뜻이 명확하지 않아 뜻이 잘 통하도록 수정했다. 원문은 http://ekostausa.tistory.xn--com-k94n91q/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신국원은 장정일의 책을 판매 중지시키고 팔린 책은 수거, 폐기케함으로써 누군가 그 책을 읽고 인간과 성과 삶에 대해 장정일과 다른(혹은 같은) 의견을 피력할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했던 행동을 놓고 <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라고 ‘거짓말’하고 있다. 장정일은 신국원으로부터 ‘다른 생각’을 들은 것이 아니라 < 책을 빼앗기고 옥살이를 했다 > . 상기 강연에서 신국원은 스스로를 이 < 사회의 대화자 > 라고 호칭하는데 안타깝지만, 원치않겠지만, 놀랍겠지만, 상대는 ‘대화’를 했다는 기억이 없을 것이고 사회는 ‘대화’를 목도했단 기억이 없으리라.
6) 30여 개가 넘는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음대협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곳은 어디일까? 사단법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기윤실)’이다. 기윤실의 ‘창립 20주년 기념 회원소식지’를 보면 기윤실이 음대협의 “설립에 직접적으로 기여”했다고 나온다.(‘기독교윤리실천운동’ 통권 208호에서 인용). 그렇기에 손봉호 서울대 교수가 음대협과 기윤실의 대표를 동시에 맡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음대협의 정책위원장을 맡은 신국원 총신대 교수(당시 기윤실 연구위원, 이후 기윤실 이사)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중심이 된 음대협이 < 거짓말 > 을 고발”했다고 증언하며( < 낮은 울타리 > , 2001년 3월호), “영화 < 거짓말 > 에 불구속 무혐의 판정”이 내려진 것은 바로 “기윤실이 패배”한 것이라고 회고한다. ( < 목회와 신학 > , 2005년 4월호). 역으로 이 말은 < 거짓말 > 에 ‘음란판정’이 내려지고 장선우가 ‘구속’되었다면 기윤실이 ‘승리’했다는 말일 텐데, 이런 승전관(勝戰觀)을 지닌 기윤실은 어떤 곳일까? 기윤실은 1987년 38명의 기독교신자들에 의해 발족된 기독교 시민운동단체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려는 점 한가지. 모든 단체들이 다 그렇겠지만 기윤실의 창립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한 명 있었는바, 상기 음대협의 대표로 소개된 손봉호 당시 서울대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그의 영향력의 크기는 기윤실이 창립 10주년을 맞아 발행한 10주년 활동 자료집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기윤실] 운동원리는 그 대표적 지도자인 손봉호 교수의 윤리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중략) 그의 사상적 발전을 그가 귀국한 197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추적함으로써 기윤실운동의 원리를 살펴보고자한다.” (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10주년 활동 자료집 > 중 ‘기윤실 10년 평가와 21세기 전망’에서 인용). 만약 이 자료집을 로카르노영화제의 마르코 뮐러 집행위원장이 읽었다면 “아니, 이거 ‘손봉호 운동’ 이잖아!”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언뜻 든다. 손봉호 교수와 기윤실이 함께 등장하는, 양자의 관계에 대한 평가를 하나만 더 소개하면: “당시 국내의 ‘기독교세계관운동’에 실천적 모델을 결합시킨 상징적 인물로 손봉호 교수를 꼽을 수 있겠다. (중략) 기독교수 모임을 통해 1987년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 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복음주의권에 시민운동의 한 사례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고.” (양희송, <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 비판적 성찰과 역동적 혁신을 위하여 > 중에서 인용). 이 말을 세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① 당시 국내 기독교계에 ‘기독교세계관운동’이 일고 있었다. ② 손봉호 교수는 그 ‘기독교세계관운동’에 참여했고 그 실천 결과가 기윤실의 탄생이었다. ③ 기윤실의 탄생은 ‘기독교세계관운동’이 시민운동이라는 영역에서 선보인 성공적인 실천 사례이자 모델이었다. 결론. <손봉호>, <기독교세계관운동>, <기윤실>은 삼 위이되, 일체이다.
7) 참고로 내가 위에서 인용한 양희송(전 < 복음과 상황 > 편집장)의 원문에는 ‘기독교세계관운동’ 대신 ‘기세’라는 줄임말(‘운동’이란 단어는 포함돼 있지 않음)이 사용됐다. 내가 ‘운동’이란 단어를 굳이 ‘기독교세계관’ 뒤에 덧붙인 이유는, 일반 독자가 종종 접하는 ‘기독교세계관’이라는 일반적인 단어와 앞으로 내가 본격적으로 비판하려는 ‘기독교세계관운동’이라는 독특한 개념이 같지 않다는 것을 보이려는 이유에서이다. 단테는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해서 『신곡』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세계관운동’을 한 적은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게 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손봉호 교수는 ‘기독교세계관운동’을 실천하는 의미/과정에서 기윤실을 주도적으로 창립했다. 그리고 그 기윤실이 음대협을 역시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그렇기에 음대협 뒤에는 ‘기독교세계관운동’이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음대협 뒤에 있는 건 ‘기독교세계관’이 아니라 ‘기독교세계관운동’이다. 이 차이점을 구분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8) “이 책으로 한국의 기독교세계관운동은 또 한걸음 전진했다”라는 추천사가 실린 책이 한 권 있다. 음대협 전 정책위원장 신국원 교수가 쓴 『니고데모의 안경』 . (추천사를 쓴 이는 한동대학교에서 ‘기독교세계관’을 가르친 양희송 전 < 복음과 상황 > 편집장 ). 신교수는 그 책에서 “한국에서 기독교세계관운동이 시작된 지도 한 세대를 넘어섰다. (중략) 이 운동의 철학과 신학을 깊이 알고 처음부터 지도적 역할을 하신 분이 바로 손봉호 선생님이다”라고 밝힌다. 이렇게 한국에서 각각 기독교세계관운동의 ‘첫걸음’과 ‘의미있는 또 한걸음’을 내디딘 음대협 전 공동대표(손봉호)와 음대협 전 정책위원장(신국원)을 하나로 묶는 ‘기독교세계관운동’이라는 끈은 어디로 이어질까. 두 사람은 모두 네덜란드에서 유학했다. 둘 모두 네덜란드 자유대학교 철학부에서 학위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자유대학교의 초대 총장 아브라함 카이퍼의 ‘기독교세계관’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렇게 음대협이란 실타래에서 풀리기 시작한 실은 기윤실, 기독교세계관운동, 신국원, 손봉호, 화란, 자유대학교, 아브라함 카이퍼로 이어진다. 긴 줄이다. 그리고 이 줄은 1637년, 역시 네덜란드에서 살고 있던 <한 남자>에게까지 가 닿는다. 그의 이름은 르네, 성은 데카르트. 거기까지 가야 얼클어진 이 실타래가 풀린다.
9) 위에서 나는, 지나가는 말로 짧게, 스위스 로카르노영화제의 마르코 뮐러 집행위원장이 기독윤리실천운동을 ‘손봉호 운동’이라고 호칭할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뮐러가 그 기윤실 자료집을 읽을리 없을진대, 나는 실은, 내가 하고 싶었던 주장을, 뮐러의 입을 빌어 한 셈이다. 정직하게 정정하겠다. 그 말은 내 말이다. 앞으로 세밀하게 살펴보겠지만, 많은 경우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손봉호윤리실천운동’이었고, ‘기독교세계관운동’은 ‘손봉호세계관운동’이었다. 여기서 ‘손봉호’라는 개인명은, <자신의 개인적인> 윤리관과 세계관에 입각해 특정 운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 보편적인 기독교>에 입각한 운동이라 착각하는 사람을 상징, 은유하는 단어이다. 토니 레인즈는 언젠가 “장감독의 다면적 모습에 대한 서술이야말로, 한국 영화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주석이 될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장감독’ 자리에 ‘손봉호’를 넣으면 한국의 <영화사>뿐만 아니라 문학사('즐거운 사라' 관련 재판), 만화사('천국의 신화' 관련 재판), 가요사(마이클 잭슨 공연 관련 재판)까지  포함하는 <한국 대중문화사  전체>를 망라하는 주석이 될 거라는 걸 외국인 토니 레인즈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10) 갑자기 머리에 떠오른 질문 하나. 토니 레인즈의 < 장선우 변주곡 > 이 상영됐던 로테르담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도시야? 찾아봐야지. (실제 찾는다). 고종석은 『감염된 언어』에서 자신을 “황홀경”으로 몰고 가는 한 문화사적 시기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 시기는 일본이 “[서양] 문화를 게걸스럽게 흡수하면서도 한자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공통 유산 속에 완전히 녹여버”리던, “일본 에도 중기 이래의 란가쿠(蘭學:네덜란드 문헌들을 통한 서양 학술 연구)와 메이지 시대 이후의 번역 열풍”이 불던 시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아! , 이제 나 또한 나를 “작은 황홀경”으로 빠트리는 한 장소를 찾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은, 음대협의 ‘발생지’이자, <실마리를 쥔 남자> 르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로테르담영화제가 열리는, 화란(和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