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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28일

스케치

1. 길 자모라(Gil Zamora)는 미연방수사국(FBI)에서 훈련받았던 화가입니다. 1995년부터 2011년까지 산 호세 경찰서(San jose Police Department)에서 일하며 범죄 수사에 필요한 그림들을 스케치했습니다. 몽타주가 대표적이겠네요. 길 자모라는 얼마전 비누로 유명한 클린징 용품 브랜드 도브(Dove)와 함께 독특한 작업을 하나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아름답습니다(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라는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든 것입니다. 3분짜리 이 다큐멘터리는 dove.com/realbeautysketches 에서 볼 수 있습니다.

2. 길 자모라가 한 여자의 얼굴을 스케치하고 있습니다. 자모라와 여자 사이에는 커텐이 드리워져 있어 자모라는 여자를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의 턱은 어떻게 생겼나요? 자모라가 묻고 여자는 대답합니다. 제 턱은 너무 커요. 이마는요? 이마는 많이 튀어나왔어요. 당신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자모라는 이렇게 여자가 묘사하는 설명만 듣고 여자의 얼굴을 상상하며 스케치합니다. 여자는 완성된 스케치를 보지 않고 떠나고, 자모라는 여자가 떠날 때도 끝내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습니다. 자모라는 이렇게 셜리, 플로렌스, 제니스, 켈라, 라니, 멀린다, 마리아 7명의 여자 얼굴을 보지 않고 그렸습니다. 얼마 뒤 자모라는 일곱 명의 여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 그가 그린 스케치를 보여줍니다. 여자들은 넓은 전시 공간에서, 자모라와 단 둘이서 천천히, 자기 얼굴 스케치를 감상합니다. 그때 감동하는 표정들이 이 다큐멘터리의 절정입니다.

3. 한 장의 그림을 기대하고 온 여자들 눈 앞에는 두 장의 스케치가 걸려 있습니다. "이건 당신 얘기를 듣고 그린 당신의 얼굴이고요(this is the sktech you helped me to create)", 자모라가 조용한 목소리로 설명합니다, "이건 다른 누군가가 묘사한 당신 얼굴입니다(and that's the sketch that somebody descirbed of you)". 아,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처음엔 제가 이해하지 못한 낯선이들의 증언들, 예를 들어 "눈이 참 깊고 아름다워요" 같은 증언들을 듣고 오른 쪽 얼굴들을 스케치한 것이었군요!  여자들의 자아상이 반영되어 있는 왼쪽 그림들은 광대뼈와 이마가 튀어나와 있고, 살이 쪘으며, 어둡고 방어적입니다. 오른 쪽 얼굴들은, 한 여자의 말대로, 열려있고(opened), 행복해보입니다(happy). 제가 볼 때 오른 쪽 얼굴들은 무엇보다 고요하고 그리고 각자의 독특한 매력이 있습니다. 여러 번 다시 봤습니다. 여자들의 작은 손 떨림. 이슬 맺힌 눈동자. 얼굴은 상기됐습니다. 모든 여자들의 입이 조금씩 벌어져 있습니다. 두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것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맞닥뜨린 여성들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단순한' 몽타주 스케치 능력을 갖고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 낸 자모라와 그 동료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제 평생 '비교'라는 단어가 이렇게 아름답게, 고맙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습니다.

4.무서운 생각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왼쪽 그림과 오른쪽 그림 위치를 바꿔봤습니다. 제 가슴은 서늘해졌습니다. 여전히 왼편에는 자기가 묘사한 - 이제 남자들도 포함됩니다 - 얼굴이 걸려있습니다. 자모라에게 이렇게 설명했을 것입니다. 제 코는 오뚝합니다. 초롱초롱한 두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합니다. 조용히 다문 입술은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를, 그 입술에 살며시 걸려있는 미소는 유우머를 잃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를 반영합니다. 역시 자모라입니다. 스케치가 멋지게 나왔습니다. 제가 봐도 맘에 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 얼굴 오른쪽에 걸려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요? 처음 보는 낯선 이의 얼굴이 걸려있습니다. 보자마자 불쾌감이 치솟습니다. 조화를 깨트리는 커다란 코. 툭 튀어나온 광대뼈와 처진 턱살. 불안으로 가득한 두 눈은 바쁘게 무언가를 쫓고 있습니다. 탐욕과 권태가 동시에 묻어나는 입술에는 거만한 미소가 걸려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한없이 어리석어 보입니다. "이건 다른 누군가가 묘사한 당신 얼굴입니다(that's the sketch that somebody descirbed of you)".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습니다.

5. 자모라가 스케치한 두 장의 그림을 보면서 C. S.루이스가 들려준 스토리를 떠올렸습니다. '공장' 비유 이야기인데,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생에서 생산한 물건을 갖고 하나님 앞에 간다. 그 '생산품'에는 우리의 인격,업적,사랑 모든 것이 포함된다. 어떤 이는 말한다. 제가 100개나 만들었어요. 그 분은, 네게 허락한 그 좋은 설비- 그러니까 좋은 가정환경, 성품, 건강 - 를 갖고 100개 밖에 만들지 않았니? 라고 하실지 모른다. 2개 밖에 만들지 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하며 두려워하는 자에게 그 분은, 그 오래된 설비와 다 쓰러져 가는 공장에서 2개를 만든 건 기적이란다, 라고 말하실지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모든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깜짝 놀랄 일이 많이 생기겠지요."(C.S.루이스,『순전한 기독교』p.151) 그러면서 루이스는 이런 사실이 어떤 이에게는 위로로, 어떤 이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덧붙입니다. "어렸을 때 성격이 비뚤어지는 바람에 잔인함이 몸에 밴 어떤 사람이 동료들의 조롱을 무릅쓰고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거나 어떤 잔인한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을 참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보다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p.150) 예, 제게는 이런 사실이, 제 삶의 일정 영역에서는 위로로, 또 다른 영역에서는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천성적으로 숫기가 없고 넉살이 좋지 않은 제가 지금 생에서 누군가에게 몇 번 먼저 다가갔던 걸 보시고, 그때 군인처럼 용감했지, 넌! , 이라고 말씀해주실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고 이어받은 글재주를 갖고 쓴 제 글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뭐라 하실까요. 그래서 미래의 어느 시점, 제가 하나님과 함께 감상하는 스케치 전시회 주제는 두 개일것입니다. '내 마음,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아팠단다'(You are uglier than you think)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아름다워'(You are more beautiful than you think). 양자 모두에서 제 손은 각각 다른 이유에서 떨릴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떨리든지, 제 손을 잡아주소서. )

(후기)
원래 저는 윗 글 마지막 부분에서, 첫 번째 전시회의 주제가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추해'(You are uglier than you think) 일 거라고 썼습니다. 그러면 상기 프로젝트 캐치프레이즈와 대구(句)가 잘 맞습니다. 어글리와 뷰티풀. 그런데 그 글을 쓰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제 마음 여전히 꺼림칙했습니다. 제가 아는 하나님, 천국에서, 우리 면전에서, 너는 추해,라고 말씀하실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악했단다' 로 고쳤다가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내 마음,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아팠단다'로 바꿨습니다. 영어 문장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무어라 말씀하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2013.5.8.)